좋아하는 여름 풍경에는 낮잠 자는 사람들이 있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아주머니, 파리채를 손에 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슈퍼 사장님, 가지를 말리는 평상 위에서 고양이와 나란히 잠든 할머니. 무더위가 잠시 주춤해진 7월의 오후, 동네 곳곳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린다.
어린 시절에는 빠뜨리지 않고 낮잠을 잤다. 점심을 먹고 몸이 나른해지는 오후 두 시, 엄마는 거실 바닥에 여름 이불을 깔았다. 깃털처럼 얇고 몸에 닿으면 기분 좋게 까슬까슬했던 그 이불 위에 누우면 이마 위로 바람이 불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한 줌의 바람, 그 바람의 방향을 내 쪽으로 돌려주던 엄마의 부채질, 여름 낮잠은 보약이라던 엄마의 말. 인생에서 자격을 따지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이 있다면, 그건 여름날의 낮잠이 아닐까.
낮잠 좀 주무셨습니까? 아끼는 사람을 만나면 묻고 싶다. 낮잠을 잘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그것은 단지 몸을 뉠 장소나 시간을 가졌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낮잠에는 눈을 감고 있는 동안에도 안전하다는 감각, 방해받지 않으리라는 신뢰,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불볕더위 속에서도 쉬지 않고 일하다 숨진 젊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사를 읽는 이 슬픈 여름에, 우리가 서로를 위해 빌어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낮잠이 아닐는지.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다면, 당신을 데리고 가고 싶은 장소들이 있다. 이른바 낮잠을 허락하는 장소들.
뜨거운 햇빛이 슬쩍 가려지고, 바깥 소음은 들어올 수 없으나 바람은 드나들 수 있는 틈이 있는 곳이다. 완전히 닫히지도 활짝 열리지도 않은 공간. 그런 곳이라면 잠깐 단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단잠이라니… 듣기만 해도 달콤한 말이다. 우리 모두 쉽게 잠 못 드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낮에도 밤에도 멈추지 않는 알람. 쉼 없이 깨어 있어야 하는 응답의 삶, 끊어질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 과잉 연결 사회. 반면 누구에게도 쉽게 열지 못하는 마음은 굳게 닫힌 문 뒤에 선 것처럼 우리를 외롭게 한다. 지나친 연결과 개방, 심리적 고립과 단절 사이에서 모두 ‘잠시 눈을 붙일 틈’조차 잃고 사는 건 아닐까.
낮잠을 자는 사람들에게 내가 느끼는 우정이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의 한복판에서 편안히 잠든 얼굴을 보면, 조급한 내 마음도 덩달아 여유를 찾는다. 또 잠든 이의 얼굴에는 그가 가진 가장 순한 표정이 깃들어 있지 않던가. 어쩐지 깨우고 싶지 않아진다. 한때는 누군가의 무릎을 베고, 부채 바람에 이마의 땀을 식히던 이들의 단잠을 빌어주는 일은 단순한 응원이 아닌,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경쟁과 욕망의 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여름날, 낮잠 자는 풍경을 지키고 싶다. 쉼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삶 속에서 잠시 눈을 감는 일은 회복이자 저항이며, 여름의 선물이 아닐는지. 서로의 잠을 지켜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안전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와 당신의 모든 시간이 생산성으로 환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당연한 권리로 누릴 수 있기를. 우리의 단잠이 여름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오래 남기를 바란다.
신유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