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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깨끗한 전통주

입력 2025.07.17 20:57

수정 2025.07.1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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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원도 횡성으로 전통주 체험을 다녀왔다. 미쉐린 3스타인 밍글스를 비롯해 국내 유명 레스토랑에 공급할 정도로 그 맛을 인정받고 있는 양조장이어서 궁금해하던 곳이었다.

나는 5년 전 전통주를 사업으로 접근했다. 그때 귀리로 누룩을 직접 만들었다. 그 누룩으로 단양주(막걸리)와 이양주·삼양주(청주)를 빚었다. 그리고 소주까지 증류했다. 초보자인 내가 만든 술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고두밥을 지어 누룩을 섞어 스테인리스 통에 넣고 며칠 동안 저어준 게 전부였는데 맛있는 술이 나왔다. 술을 배우는 하루하루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우리 미생물과 곡물의 저력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손수 만든 누룩에, 우리 쌀에, 거기에 투입된 내 품과 시간을 감안하면 가격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증류 소주는 최소 5만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았다. 1만원도 하지 않는 와인이 전국 편의점에 깔리는 시대에 누가 이런 비용을 지불하겠느냐는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전통주 사업자가 수입쌀에 효소, 첨가제를 넣어 맛과 향을 내는 것을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걱정하는 한편 이해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국내 양조업계 트렌드는 인공적 첨가물을 쓰지 않으려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양조 선진국과는 정반대다. 게다가 2024년 정부는 업계 요구를 이유로 일부 전통주에 색소와 첨가제 사용을 완화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이 양조장은 5년 전에 내가 했던 고민을 정면 돌파한 곳이다. 약사·대기업 은퇴 후 귀농한 70대 노부부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이 양조장은 일체의 인공적 첨가물 없이 옛 방식대로, 우리 쌀에 우리 누룩을 써서 손으로 술을 빚는다. 심지어 술을 백두산과 제주도의 생수로 만들고 있었다.

술 빚는 체험을 마치고 석탄주(술이 맛있어 삼키기가 아쉽다는 뜻의 약주), 과하주(도수를 높인 청주, 18.5도다), 삼양주 탁주를 맛봤다. 무엇보다 깨끗했다. 육전과 고기튀김을 떠올릴 만큼 보디감도 단단했다. 병 디자인도 근사했다. 단아한 유리병에 라벨 디자인은 모던했다. 마개도 와인처럼 코르크를 썼다.

술을 마시며 약사 출신 양조장 대표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외가는 100여년 전 부산 기장에서 양조장을 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에게 술은 비용과 수익의 함수가 아니라 집안 전통과 철학을 되살리는 오마주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직하게 깨끗한 술을 고집했고 그 고집이 다시 맛과 스토리의 원천이 됐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와인만큼이나 오래된 전통주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에 견줘 내러티브는 턱없이 부족하다. 왕가를 비롯해 수백년 된 명문가가 많지만 이들 가문을 말해주는 전통주는 드문 게 현실이다.

K컬처의 글로벌 유행에 발맞춰 전통주의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지원하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지만, 우리 술의 미학과 가치를 보여주는 탄탄한 내러티브가 더 시급한 것 아닐까.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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