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밝은 방, 퇴이, 신비복숭아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밝은 방, 퇴이, 신비복숭아

입력 2025.07.17 20:59

수정 2025.07.17 21:02

펼치기/접기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밝은 방, 퇴이, 신비복숭아

봄꽃 눈뜰 무렵 사진 하나를 받았다. 무릇 사진에는 인물이나 풍경이 서로 나오려고 기를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휑한 사진이었다. 사진이란 피사체까지 닿았다가 튕겨 나온 빛들의 집합이다. 빛을 물줄기처럼 조절할 수 있다면 이 세계의 표면적은 얼마나 늘어날까. 너와 나 사이, 그 어떤 섬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일. 애석타, 카메라는 그걸 포착하지 못한다.

텅 빈 방을 보여주는 사진. 모처럼 벽과 바닥이 우쭐한 방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없는 듯 있었던 형광등과 유리창이 그 큰 눈을 껌뻑거리는 게 이제야 보였다. 밝은 방. 품 안의 거울처럼 나는 종종 사진을 꺼내보았다.

그 사진은 가르치는 업에 진심이던 내 일생의 친구가 정년을 맞이하며 보내준 것이다. 나도 여러 번 가본 방. 어쩌다 바둑 둘 때 장고 끝에 흰 돌을 떨어뜨려 바닥에서 찾으려면 먼지는 물론 학생들과 나눈 대화가 낙엽처럼 쌓여 있던 방. 공부의 기쁨과 슬픔, 때로는 일의 의무나 억압을 전달하며 바닥에 어지럽던 전선들도 모두 걷어낸 후련한 방. 문득 등 뒤에서 나를 옭아매는 복잡한 선들이 떠올랐다.

사물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공간을 거느리는가 보다. 그 방은 벽엔 책과 논문, 책상엔 서류들로 꽤 북적이던 곳. 또한 작은 다탁이 있어 제법 넉넉하게 이야기하며 놀았다. 그런데 빈방은 외려 왜 이렇게 좁아졌을까. 혹 사물들마다 제 몫의 공간을 들고 사라진 것일까.

친구에겐 한학에 밝은 선친께서 지어주신 호가 있다. 퇴이(退而·물러나서). 밝은 방을 깨끗이 치운 친구는 퇴이답게 한적한 곳으로 물러났다. 원주의 작은 복숭아 농장으로 직행한 것이다. 그곳 역시 각종 줄들로 번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구실의 전깃줄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선들. 이를테면 거미줄이나 덩굴식물의 까끌까끌한 줄기, 땅 밑으로 가지보다 더 멀리 뻗어가는 뿌리들. 친구는 새로 만난 학생들과 진심으로 씨름하고 있었다.

며칠 전 친구가 병원 가는 길에 내게 잠깐 들렀다. 상투적인 갈비탕으로 점심 먹고 헤어지는데 올해 첫 수확이라며 신비복숭아를 내밀었다. 신비한 복숭아? 수돗물을 철철철 틀어놓고 펄펄펄 날뛰는 복숭아를 붙잡아 한입 깨무는데, 울컥, 여러 복잡한 맛들이 흘러나왔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