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눈뜰 무렵 사진 하나를 받았다. 무릇 사진에는 인물이나 풍경이 서로 나오려고 기를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휑한 사진이었다. 사진이란 피사체까지 닿았다가 튕겨 나온 빛들의 집합이다. 빛을 물줄기처럼 조절할 수 있다면 이 세계의 표면적은 얼마나 늘어날까. 너와 나 사이, 그 어떤 섬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일. 애석타, 카메라는 그걸 포착하지 못한다.
텅 빈 방을 보여주는 사진. 모처럼 벽과 바닥이 우쭐한 방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없는 듯 있었던 형광등과 유리창이 그 큰 눈을 껌뻑거리는 게 이제야 보였다. 밝은 방. 품 안의 거울처럼 나는 종종 사진을 꺼내보았다.
그 사진은 가르치는 업에 진심이던 내 일생의 친구가 정년을 맞이하며 보내준 것이다. 나도 여러 번 가본 방. 어쩌다 바둑 둘 때 장고 끝에 흰 돌을 떨어뜨려 바닥에서 찾으려면 먼지는 물론 학생들과 나눈 대화가 낙엽처럼 쌓여 있던 방. 공부의 기쁨과 슬픔, 때로는 일의 의무나 억압을 전달하며 바닥에 어지럽던 전선들도 모두 걷어낸 후련한 방. 문득 등 뒤에서 나를 옭아매는 복잡한 선들이 떠올랐다.
사물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공간을 거느리는가 보다. 그 방은 벽엔 책과 논문, 책상엔 서류들로 꽤 북적이던 곳. 또한 작은 다탁이 있어 제법 넉넉하게 이야기하며 놀았다. 그런데 빈방은 외려 왜 이렇게 좁아졌을까. 혹 사물들마다 제 몫의 공간을 들고 사라진 것일까.
친구에겐 한학에 밝은 선친께서 지어주신 호가 있다. 퇴이(退而·물러나서). 밝은 방을 깨끗이 치운 친구는 퇴이답게 한적한 곳으로 물러났다. 원주의 작은 복숭아 농장으로 직행한 것이다. 그곳 역시 각종 줄들로 번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구실의 전깃줄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선들. 이를테면 거미줄이나 덩굴식물의 까끌까끌한 줄기, 땅 밑으로 가지보다 더 멀리 뻗어가는 뿌리들. 친구는 새로 만난 학생들과 진심으로 씨름하고 있었다.
며칠 전 친구가 병원 가는 길에 내게 잠깐 들렀다. 상투적인 갈비탕으로 점심 먹고 헤어지는데 올해 첫 수확이라며 신비복숭아를 내밀었다. 신비한 복숭아? 수돗물을 철철철 틀어놓고 펄펄펄 날뛰는 복숭아를 붙잡아 한입 깨무는데, 울컥, 여러 복잡한 맛들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