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머무를 자리가 없다
국도의 수많은 차들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 걸까
창가에 걸터앉아
라디오 안테나를 고치다
서성이듯 기침이나 뱉는 하루
앞집 담벼락의 가시철조망처럼
내일이 가슴을 파고든다 어제도 덜 잊었는데
오늘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새 현관에 칠해진 독백을 헤아린다 아무리 찢어도 쌓이는
아무것도 아직 추하지 않아서
접시를 씻는 어머니는 우리가 철거당하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
어두운 뒷모습 속에도 성실히
피가 돌고 있다
언제까지 이 집에서 잠들 수 있을지 생각할 때마다
어쩌면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것 같다 현기증마냥 오늘도
시퍼런 해는 썰물이 밀려가듯이
눈물이 흐르는 쪽으로 지고
최백규(1992~)
재개발 구역에 있던 시인의 집에는 “빛이 머무를 자리”가 없었다. 빛마저 도망치던 집. 빛보다 점점 느는 빚들이 오래 머물던 집. 장롱 안에는 가계의 눅눅한 사연들이 마르지 않은 채 겨우 숨을 쉬었을 것이다. 시인에게 ‘재개발’은 바람의 엉킨 머리칼처럼, 찢어진 방충망처럼 망가져 가는 슬픔이었다. 라디오 안테나보다 더 고장 난 마음의 주파수를 맞출 수 없던 집, 탈출을 꿈꾸었을 그 집은 언제나 위험했다.
창 너머 국도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기침이나 뱉는” 시인의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갔다. “앞집 담벼락의 가시철조망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내일. “어제도 덜 잊었는데” 오늘 밤을 어떻게 보낼지 근심하는 날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등 뒤로 새까맣다. 아직 “철거당하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면서, 마음이 먼저 철거당했다. 누수된 시간들, 다 쓰러지지는 않아 안심했지만, 여전히 재개발 중인 멀고도 먼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