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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사람만이 희망이다

입력 2025.07.22 20:43

수정 2025.07.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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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7일에 독일 보훔대학교 한국학과에서 번역 워크숍과 낭독회가 있었다. 한국학과 학생들이 한국 작가의 단편을 독일어로 번역해서 발표하는 행사다. 내 단편이 한국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번역하거나 연구할 만한 문학적 가치가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실력은 엄청났다. 오전에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번역 워크숍 수업을 했고, 저녁에는 지역 주민들도 참가하는 공개 행사로 낭독회가 있었다. 굉장히 즐겁고 인상 깊은 하루였다.

요즘 해외 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은 한국어를 정말 잘한다. 스페인 살라망카대학교,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 그리고 이번에 보훔대학교 한국학과 수업까지 세 번째다. 모두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한국어로 진행하면서 매번 학생들의 실력에 놀랐다. 보훔대 한국학과에서 나를 초청한 교수님은 한국인 여성이며 학생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았다. 어떤 학생은 이 교수님 번역 워크숍을 벌써 몇번째 되풀이해 수강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학생들이 번역한 한국 작품은 나중에 모아서 학교 문예지 형태로 출간도 한다.

교수님은 간호사인 언니를 따라 독일에 오셨다고 한다. 독일은 학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한국학과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자녀는 성장하여 지금은 프랑스에서 살면서 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교수님은 그래서 독일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내가 살면서 공부했던 미국을 떠올렸다. 어째서 러시아 문학을 미국에서 공부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답은 돈이다. 러시아는 외국인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 러시아인에게는 러시아 국립대학교 학비가 무료지만 어디까지나 자국민이 국립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당하는 얘기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한인 유학생들은 대부분 같은 한국인 자녀들에게 과외수업을 하거나 여행 가이드로 일하거나 뭔가 공부와 관련이 없는 학교 밖의 노동을 해야 한다.

한국은 자국민이고 외국인이고 대학원생에게 장학금 기회가 몹시 적은 곳이라 차라리 러시아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대학원에 장학금 제도가 없다는 것은 고등교육에 그만큼 투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력 있는 인재가 적절한 보상을 받고 정당한 연구 노동을 수행하며 연구자로서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은 대학원 장학금 제도가 다양하고 폭이 넓어서 외국인도 조교로 일하면 등록금을 면제받고 생활비도 벌어서 자기 힘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최소한 내가 공부할 때는 그랬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교육 예산이 전부 깎이면서 국공립대학교들이 어문계와 순수자연계 등 기초학문 분야를 전부 통폐합하고 있다. 말이 좋아 통폐합이지 교육 예산을 증발시키고 학과를 없애고 기초학문 연구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학생들이 수시로 추방당한다.

지난 4월 필립 K 딕 상 시상식에서 만난 수보드하나 위제예라트네 작가님의 본업은 역사학 교수인데 올해 봄 학기 동안 학생 세 명이 강제추방을 당했다고 한탄했다. 학생만 위태로운 게 아니다. 위제예라트네 작가님은 스리랑카계 영국인이고 부인은 일본인이다. 부부 모두 백인이 아닌 것이다. 작가님은 미국 학교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는 학교가 좋아서 미국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니 영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셨다. 그 후 트럼프 정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민국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해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진작 탈출하길 잘했다는 씁쓸한 생각과 동시에 미국에서 유학하는 후배와 학생들이 떠올라 마음이 불안해졌다.

한국에서는 스물세 살의 젊은 이주노동자 청년이 폭염에 목숨을 잃었다. 한두 번이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한국에 온 사람들이 얼어 죽고 끓는 더위에 죽고 산업재해로 죽는다. 이 와중에 극우단체가 동포와 이주민들을 겨냥한 혐오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주노동자와 유학생은 다르지 않냐고? 나를 초청한 교수님은 이주노동자의 가족으로 독일에 정착했다. 그리고 한국학 교수님이자 한국 문화예술을 다큐멘터리로 재조명하는 예술가의 어머니가 되었다. 사람의 삶이란 이렇게 입체적인 것이다. 한국은 천연자원도 별로 없고 땅도 좁은 나라다. 우리에겐 사람만이 희망이다.

정보라 소설가

정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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