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대구 판관 이성진은 관아에 항명했다는 이유로, 대구부 면임(面任)들과 백성 대표 300여명을 매질했다. 한 번에 모두를 처벌할 수 없어서, 1761년 음력 6월 말부터 3번에 걸쳐 이를 시행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대구 판관이 대구부 전체 백성들을 매질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는데, 그 이유는 가좌책 때문이었다.
가좌책은 지역 내 모든 백성의 집과 사람, 재산들을 속속들이 기록한 일종의 호적이다. 호구와 개인 소득까지 국가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군현 지방관이 별도로 이러한 자료를 만드는 게 이상할 수 있다. 조선 역시 세금과 역(役)을 부과하기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3년 단위로 호적을 작성했다. 지방관들은 이 일의 실무자들이었으니, 제대로 호적을 작성했다면 별도의 가좌책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당시 지방관들이 조정에 보고하는 호구는 지역의 실제 상황과 크게 차이가 있었다. 군현 내 모든 사람의 수를 가감 없이 보고하면 지역에서 부담해야 할 세금과 역이 늘기 때문이었다. 중앙에 보고할 호적을 작성할 때, 지역이 감당할 수 있는 세금과 역을 감안해 지방관과 향리들이 이를 적절하게 편집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각 군현을 다스리는 수령 입장에서는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의 정확한 사정을 별도로 파악해야 했다. 좋은 의도로 보면, 지역 사정을 정확하게 알아야 중앙에서 부과하는 세금을 재산 정도에 따라 적정하게 배분하고 지역이 감당할 수 있는 역의 수준을 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임 판관 이성진의 가좌책 제작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이성진이 이를 만들려고 하자, 지역 면임들을 대표해 화원마을 우씨가 이 일을 반대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들은 지역 백성들 300여명 역시 일제히 대구부에 소장을 올려 가좌책 만드는 일의 부당성을 토로하고 나섰다. 관아에서 하려는 일에 대구부 백성 전체가 반대하고 나선 꼴이었으니 대구 판관으로서도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관아에 항명한 이들을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구부 백성들을 대표해서 관아에 소장을 올린 이들에게 형장을 가했다.(최흥원, <역중일기>)
그런데 이 같은 백성들의 행동에도 이유는 있었다. 세금과 역이 늘어날 것을 걱정해서 지방관이 조정에 보고할 호적을 적절하게 편집했던 것처럼, 지역 백성들 역시 자기 집의 세세한 호구와 재산 목록이 사실대로 드러나면 세금과 역이 늘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조정의 호적 조사 이유가 세수를 더 많이 확보하는 데 있었던 것처럼, 지방관의 가좌책 제작 이유 역시 그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많은 지방관들은 조정에 보고한 호적과 자신들이 실제 파악한 호적 사이의 차이를 이용해 조정 몰래 이익을 취하기도 했다. 대구 판관이 부임하자마자 가좌책부터 만들려는 의도부터 의심받은 이유였다.
조금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가좌책은 백성들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정확한 호구와 재산 상황이 파악되면, 많이 가진 사람들이 세금을 더 부담하고, 공평하게 역을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좌책이 작성되면 늘 세금과 역은 늘었고, 그것이 심지어 지방관의 부정축재로까지 이어졌으니 백성들 입장에서는 가좌책 작성의 의도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정책을 시행할 때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은 국민들로부터 그 정책 이면의 의도에 대해 의심받는 경우다. 가좌책의 예에서 보듯, 국민적 의심은 대부분 그 이전의 경험이 만든 결과다. 이처럼 사적 이익을 위해 공적 시스템을 이용하는 행위가 정말 나쁜 이유는 개별 사안에 대한 부정을 넘어, 공적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의 중요 과제 중 하나가 무너진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어야 하는 이유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