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작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는 종말이 닥친 길 위에서 아빠와 아들이 꽁냥꽁냥 주고받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소년은 아빠와 줄곧 말을 나누며 생존의 길을 떠도는데, 책의 끝부분에서 아빠가 죽고 이젠 다른 대화 상대를 만나게 된다.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 정말 반갑구나. 여자는 가끔 신에 관해 말하곤 했다.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으나,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고.”
나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여러 가지 부류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는 편이다. 무람없이 단도직입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곰살갑게 대하면서 다정한 말로 다가오는 이는 고맙다. 말투부터 쉼표가 그려져 있다. 누군 어린애처럼 새근발딱 새근발딱 숨을 고르다가 얘길 꺼내기도 하고, 앙냥거리면서 인생의 짜증과 울화를 터뜨리기도 하고, 끙끙대다 떠듬떠듬 어렵게 속엣말을 꺼내기도 한다. 말을 많이 떠벌리는 사람은 앞의 말을 수습하려다가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하는데, 말이 없는 답답한 사람보다야 낫다.
토막말이나 꺼내고 통 입을 열지 않는 답답한 ‘곰’은 질색이다. 반면 수다쟁이를 만나면 행복해진다. 무슨 특별한 내용이랄 것도 없는 얘기지만 그런 자잘한 이야기란 세상을 짜깁는 실과 같거든. 좔좔좔좔 냇물이 흐르듯 풀어지는 인생사. 고향 땅이 어디메요 시작되는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야기도 그리워라. 수다쟁이 친구를 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아.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살기 어렵다질 않던가. 저도 모르게 실토를 하는 수다쟁이는 죗값을 크게 할인해주어야 해. 말이 없고, 말을 아끼며 눈만 깜박깜박하는 죄인은 중죄로 다스리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