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광폭 소통 행보를 했다. 야당 지도부를 만났고, 국회 시정연설을 했고, 취임 한 달 기자회견을 했고, 타운홀 미팅으로 여러 지역 시민과 토론했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과 대비되는 이런 모습에 여론도 호의적이어서 이 대통령은 60%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문제가 터졌다. 어제, 그제 몇몇 지인이 이 문제로 연락을 해왔다. 지난겨울 윤석열의 내란을 막기 위해 광장에 나간 평범한 시민들이다. 한 지인은 “이 대통령 당선되고 처음으로 화가 나려고 한다”고 했다. 다른 지인들 반응도 비슷했다. 이 대통령이 혹여 일을 그르쳐 내란 세력에 반격의 빌미를 줄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선의로 충만한 시민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걱정하는 건 불길한 징조인데, 강 후보자의 거취를 둘러싼 사람들 반응이 그랬다.
내란 극복을 위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절박하게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린 것일까. 강 후보자는 23일 “저로 인해 마음 아프셨을 국민께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며 사퇴했다. 여론에 기민하게 반응하기로 유명한 이 대통령이 집권 후 처음으로 여론과 척질 뻔한 ‘강선우 사태’는 이렇게 일단락됐다.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는 것, 민심에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이 대통령이 무겁게 곱씹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본다.
인사는 메시지다. 이번 조각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윤석열 정권이 임명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킨 흑묘백묘론식 인사실험이다. 이 대통령이 송 장관을 유임시킨 건 국무회의에서 확인한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성향이 다르다, 누구와 관련 있다, 누구와 친하다는 이유로 인사에서 배제하기 시작하면 정치보복으로 발전할 수 있다. 기본 역량이 있고 국가와 국민에 충실한 기본자세를 갖고 있으면 다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내란을 딛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과제는 내란 극복과 국민 통합이다. 문제는 이 두 가치가 현실에서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 딜레마가 특히 두드러지는 영역이 인사이다. 통상 국민 통합형 인사라고 하면 집권 진영 바깥이나 상대 진영에서 인재를 발탁하는 걸 말한다. 이런 인사가 가치 지향이나 순도 면에서 집권세력 지지층의 성에 찰 리 없다. 그렇다고 정체성만 강조하면 국민 통합을 무시한다거나 ‘코드 인사’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이 딜레마에 대한 이 대통령식 해답이 ‘로보트 태권V론’이다. 공직사회는 로보트 태권V와 같고, 운전대를 누가 잡느냐가 중요하다는 논리다. 정체성이 다르더라도 유능하면 새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정책 실현 수단으로 얼마든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송 장관이 그 적임자인지, 관료사회가 그리 만만한지 두고 볼 일이지만 진영주의를 넘어서려는 이 대통령의 시도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이 인사실험이 성공한다면 통합과 개혁이라는 이율배반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좁은 오솔길이 하나 만들어질 것이다.
12·3 내란을 옹호한 강준욱 전 국민통합비서관을 발탁한 건 전혀 다른 경우다. 시민들로부터 내란 극복을 위임받은 이 대통령의 재량 한계 일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알베르 카뮈식으로 말하면, 국민 통합은 민주공화국 가치를 부정한 사람들에 대한 관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건 내일의 내란에 용기를 주는 어리석은 짓이다.
강 전 비서관은 저서에서 퀴어축제에 대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김민석 총리는 2년 전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했고, 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할 생각이 있으나 여론지형상 지금 당장 못하는 것과 애초에 할 생각이 없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이재명 정부는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이 대통령의 ‘로보트 태권V론’은 조종사의 가치중심이 확고할 때 성립한다. 실용 없는 가치가 맹목이라면, 가치 없는 실용은 공허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강조한 뜻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공허한 실용은 내 사람을 챙기는 데 편리한 알리바이가 되기 쉽다. 그래서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서생적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여러 인사 잡음의 근인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정제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