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를린 의회 앞에서 제노사이드 반대 캠프가 열렸다. 평화 시위에 나선 참가자들이 캠프 앞에 앉아 집회 연설을 듣고 있다(위쪽 사진). 한쪽에서는 깃발을 흔드는 참가자도 보였다. ⓒ레나
길을 가다가 갑자기 살해 위협을 받는다면, 길에서 나눠주는 물품을 받으려고 서 있다가 갑자기 폭탄이 떨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로드블록(roadblock)은 도로에 설치된 물리적 장애물, 진행을 방해하는 심리적 방해물을 뜻하는 단어다. 1994년 르완다 투치족에 대한 집단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세타: 로드블록 너머(Iseta: Behind the Roadblock)>를 보면 도로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후투 민병대가 투치족을 마체테로 학살하는 장면이 그대로 등장한다. 길에 널린 시체들과 시체 앞에서 춤을 추는 민병대의 모습은 끔찍함 그 자체다. 르완다 학살은 제노사이드의 전형적인 사례로 민족주의와 권력, 국제적 무관심이 결합할 때 일어나는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제는 굳이 도로를 봉쇄하고 검문할 필요도 없다. 첨단 기기를 사용해 무방비한 상대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침해하지 않고, 테러리즘이 없는 가자지구’ 건설을 목표로 내세우며 폭격을 지속한다. 그러나 유엔 구호 트럭에서 구호품을 기다리던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것이 과연 안보를 위한 일일까.
유엔이 정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국민·인종·민족 또는 종교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말살할 의도로 행한 살해, 신체적·정신적 위해 유발, 생활 조건의 강제 변경, 출산 방지 및 아동 강제 이주 등 행위’다. 두 집단 종교의 뿌리가 같다고 생각해서일까, 네타냐후가 벌이는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격이 감정적 민족주의에 따른 제노사이드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베를린을 떠나기 전날 티어가르텐에 있는 소비에트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소련군 전사자를 추모하는 곳이다. 근처에서 제노사이드 반대 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라이브 방송을 켜고 제노사이드에 반대한다는 깃발을 든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휠체어에 앉은 연설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이에게 어떤 행사인지 묻자, 이스라엘의 레바논 재공습에 반발하기 위해 모인 행사이며 의회 앞을 점거 중이라고 답했다. 깃발을 흔드는 이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해졌다.
이들의 목소리는 도로를 뚫고 나갈 수 있을까. 로드블록은 이제 보이지 않는 형태로, 무관심으로 존재한다. 숙소에 돌아와 정보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 공습’을 검색하자 연관 검색어로 뜬 것은 ‘이스라엘 전쟁 관련 주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