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링은 한때 국민의 심장을 뛰게 한 스포츠였다. 1960년대 국내에 소개된 후 1970년대 흑백TV 시절 공전의 인기를 구가했다. 경기 날이면 동네 아이들은 TV가 있는 집에 모여 김일의 박치기에 환호했고, 천규덕의 당수에 열광했다. 어른들까지 숨 죽이며 피 흘리는 승부를 지켜보던 프로레슬링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온 가족이 즐기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한 선수의 폭로성 발언이 터지며 팬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프로레슬링은 외면당했다.
잊혀지나 싶던 프로레슬링은 1980년대 한 미국인의 등장 후 부활했다. 바로 헐크 호건이었다. ‘쇼’라고 폄하되던 프로레슬링을 가족친화적 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었다. 말굽 모양의 수염과 원색의 의상, 경기복을 찢으며 등장하는 퍼포먼스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고, 전 세계에 프로레슬링 신드롬을 일으켰다. ‘24인치 비단뱀’으로 불린 근육질의 팔뚝으로 날리는 보디슬램은 팬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국내에서도 호건 덕분에 프로레슬링 인기가 서서히 확산됐다. ‘김일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호건의 호쾌한 플레이는 비디오테이프와 케이블TV를 통해 국내에 전해졌다. 덕분에 “프로레슬링이 쇼면 어때? 재미있으면 됐지”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승부는 미리 정해진 각본이었지만, 팬들이 그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호건의 존재와 동작은 화려했다. ‘더 록’으로 유명한 드웨인 존슨, 앙드레 더 자이언트 등과의 명승부는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다.
호건이 지난 24일(현지시간)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그의 타계에 전 세계 팬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는 전 세계 팬들을 즐겁게 만들었고, 그의 문화적 영향력은 거대했다”며 “헐크 호건이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인종차별 발언과 사생활 논란으로 인해 한때 호사가들의 입길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가 4각의 링 위에서 보여준 도전 정신만큼은 팬들의 뇌리에 또렷하다. 평생 무대 위에서 싸우다 떠난 전설의 레슬러, ‘헐크 호건의 쇼’가 끝났다.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이 지난해 10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가 연설하기에 앞서 셔츠를 찢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