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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방과 연꽃

입력 2025.07.28 21:27

수정 2025.07.2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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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원이 대세다. 순천만과 태화강 등 국가정원이 2곳, 지방정원은 15곳이나 된다. 전 국민의 호응이 뜨겁다. 이제 먹고살 만하니까 정원에 눈을 돌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염과 인공시설물로 뒤덮인 도시의 숨구멍이 정원이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도 정원을 가꿨을까? 자연에 기댄 위락 공간이 우리 시대 정원이라면, 예전에는 철학적 담론과 문화 교류의 장이 정원이었다.

경북 영양에는 전통 정원의 대표 중 하나인 서석지(瑞石池)가 있다. 퇴계 학풍을 이어받은 정영방(鄭榮邦)이 조성한 원림이다. 그는 당파싸움에 찌든 조정을 멀리하고 고요한 영양으로 거처를 옮겨 ‘거경궁리’와 ‘주일무적’이라는 화두를 잡고 공부에 전념했다. 스승인 정경세가 벼슬길에 나설 것을 권하자 그는 학문에 매진할 수 없고, 명예를 더럽힐 수 있다며 고사했다. 마을 뒷산의 이름을 주자가 살던 지명을 따라 자양산이라 짓고, 그 아래 원림을 꾸몄다.

덕을 숨기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던 그는 연꽃의 기품을 흠모했다.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은’ 연꽃이 군자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림을 조성하며 연꽃을 심으려 마당을 파자 돌들이 나왔다. 크고 작은 돌 수십개가 땅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상서로운 돌(瑞石)’로 생각하며 무척 기뻐했다. 땅속에 숨어 있던 하얀 돌에서 군자를 지향하던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십여개의 돌에 신선이나 용, 꽃, 나비 등을 닮았다며 각각의 이름을 지어주며 숨을 불어 넣었다.

연못의 한쪽에는 사우단(四友壇)을 두어 소나무·대나무·매화·국화를 심었는데, 모두 절개, 지조 등을 상징하는 식물이다. 대문 옆에는 은행나무를 심어 공자를 기렸다. 이 모든 것을 굽어볼 수 있는 곳에 성리학의 정신인 경(敬)을 실천하는 정자를 세웠으니, 서석지는 단순히 꽃과 나무, 돌과 물을 완상하는 원림이 아니다. 성리학적 사상을 물리적 공간에 투영시켜, 자연 이치를 궁구하고 도덕적 정진을 추구하는 사유의 원림이었다.

지금 정원의 세계적 추세는 자연주의다. 정영방은 이미 400여년 전에 성리학에 기초한 자연주의 정원을 꾸민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하늘과 땅의 뜻에 따라 원림을 꾸몄으니, 서석지는 천지인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자연주의 사상에 입각한 정원이 또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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