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지난 20일 종영한 드라마 <굿보이>는 극중 이름이 ‘윤동주’인 경찰 역을 맡은 주인공 박보검이 유흥업소로부터 뇌물을 받는 팀원들을 향해 단호하게 일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차명재산 의혹으로 사퇴한 민정수석, 표절 시비로 지명이 철회된 교육부 장관 후보자, 갑질 논란으로 형식상 자진사퇴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보며 이 대사가 더욱 또렷이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히는 윤동주의 ‘서시’ 중 이 구절은, 낙마한 이들 또한 한때는 마음에 새겼을 법한 문장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 가지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첫째는 부끄러운 행위를 한 것, 둘째는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인정하지 않은 것, 셋째는 진심으로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지치근호용(知恥近乎勇)”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들이 비록 늦었더라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직시하고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며 국민 앞에 제대로 사과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싶다.
한자 ‘부끄러울 치(恥)’는 마음(心)을 귀(耳)로 듣는 형상이다. 부끄러움은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하지만 개인의 윤리의식만으로는 사회의 부정의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몇년 전 ‘정의’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고리를 던져 성공하면 돈을 주는 게임에서, 감독관이 없자 참가자 절대다수가 선을 넘어 던지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그 이유는 “남이 안 보니까. 돈이 걸려 있으니까”였다. 이는 제도적 통제가 없다면 인간의 욕망은 쉽게 도덕적 경계를 넘어선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부끄러움을 개인의 도덕적 결핍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더욱 투명한 감시와 책임 시스템을 갖춘 사회 구조가 필요하다. 먼저 부끄러운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 시스템, 곧 부정이나 비리, 비윤리적 행위를 해도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깨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 적발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방법은 바로 내부 공익제보의 활성화다.
이번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논란도 전 보좌관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반 직장은 물론, 대학 사회나 정치권에서는 상급자나 동료의 문제를 드러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내부제보를 ‘고자질’이나 ‘배신’으로 보는 편견이 존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린이날 기념사에서 “왕따나 학교폭력을 선생님께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기본자세”라고 말했다. 침묵은 부끄러움을 가리기보다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는 점에서,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용기를 북돋우는 사회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제보자에 대한 보다 강화된 보호제도, 특히 보복에 대한 강력한 대응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부끄러운 행위에 대한 사회적 제재도 확실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갑질 행위, 교수의 논문 표절, 공직자의 불법 재산 증식 등에 대해 훨씬 강력한 징계가 필요하다. 특히 국회의원 윤리 문제는 의원들끼리 서로 감싸는 현재 구조로는 개선이 어렵다. 윤리특별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전환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의회 윤리 배심제’를 도입해 동료 의원이 아닌 국민의 눈으로 심사하게 해야 한다. 배심단의 판단을 윤리특위가 존중하고, 본회의와 직접 연계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움을 느낄 만큼 섬세한 시인의 부끄러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직을 맡으려는 이들이라면 스스로 늘 물어야 한다. “당신은 정말, 부끄럽지 않습니까?”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