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묘사하기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묘사하기

입력 2025.07.29 21:10

수정 2025.07.29 21:11

펼치기/접기

얼마 전 나는 글쓰기 모임에 온 사람들에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글감으로 글을 쓰자고 했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쓴 동명의 시집에서 영감을 얻어 정한 글감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기를 통과하는 데에 힘이 되어주는 글쓰기를 함께 연습해보고 싶었다.

나는 고통이 있어야만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창작 활동이 고통을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해준다는 데에는 크게 동의한다. 수많은 예술가가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기 위해, 어두운 기억을 소화하기 위해 창작을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가볍고 즐거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무겁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고통이 너무 버거울 때 인간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쓰게 된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가족이나 연인을 향해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게임·쇼핑·도박·약물 등에 중독되기도 한다. 중독자들은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피하고자 중독 행위에 빠져든다.

주어진 고통을 피할 수 없는바, 무언가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나는 창작 활동 그중에서도 글쓰기를 사람들에게 권하곤 한다. 다루기 어려운 감정과 경험을 해소하기에 아주 괜찮은 도구여서다. 숙취도 부작용도 없고, 원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글을 쓸 때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기보다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를 자세히 묘사해보는 것이 좋다. 뭉뚱그려서 ‘싫었다’ ‘짜증 났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집단에서 소외될까봐 두려웠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들었다’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모멸감이 들었다’ 등 구체적인 언어를 붙여주는 것이다.

지옥의 세세한 모습과 그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반응을 그리다 보면 실제로 지옥을 경험할 때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글을 보여주고 반응을 보면서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지옥을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

이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긍정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지옥의 지도를 가능한 한 자세히 그려놓으면, 누군가는 그 글을 읽고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컴컴한 어둠을 헤매더라도 아무 정보도 없는 것보다는 희미한 등불이나 지도가 있는 것이 더 나으니까. 글쓴이가 발견한 상황의 세부 묘사, 권력의 작동 방식, 감정의 진행 과정, 인간의 반응 양식 등을 보고서 누군가는 전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게 될 수 있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 내게 그런 역할을 해주었던 책이 임솔아 작가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였다. 나는 이 책을 계엄령 이후의 한국 겨울을 통과하며 읽었다. 생존에 급박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잘한 악을 행하는 것에 무감해진 현실이 절망스러웠던 시기였다.

책은 어떠한 희망도 낙관도 보여주지 않는다. 임솔아라는 맑은 창문을 통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의지할 수 있었다. 눈앞에 현실을 헤쳐나갈 때 참고할 수 있는 섬세한 지형도 같았다.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때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튀어 돌아다니는 검은 가시 공을 볼 때가 있다. 부정적 기운으로 가득 찬 이 공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타인에게 던져 해소하려 한다. 한 사람에게서 다른 한 사람으로, 검은 공이 던져질 때마다 공은 악귀 들린 듯 자라난다.

어쩌다 검은 가시 공에 얻어맞게 될 때마다 나는 비틀스의 노래 ‘헤이 주드’를 되뇐다. 노랫말은 이러하다. “이봐 주드, 나쁘게 만들지 마. 슬픈 노래를 품고 더 낫게 만들어.”

지옥에 있을 때 나는 지옥을 쓴다. 지옥을 쓴 다른 예술가들을 옆자리에 두고서 쓴다. 그러면 나는 지옥과 나의 이야기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가장 위대한 영혼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