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르카디아>에서 셉티머스(오른쪽)와 토마시나(가운데)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현대의 인물인 발렌타인이 옆에서 지켜보듯 서 있다. 스토리포레스트·파크컴퍼니 제공
니콜라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자>는 서양 예술사에서 ‘죽음’에 대한 성찰로 유명한 그림이다. 평화로운 평원을 배경으로 세 청년과 한 여성이 석관을 둘러싸고 있는데, 석관의 문구가 이 그림의 핵심이다.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in Arcadia Ego)’. 어떤 이상향이나 목가적인 세계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동명의 연극 <아르카디아>는 영국 시골의 대저택인 시들리파크에서 1809년과 현대를 오가며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지적인 작품이다. 수학과 자연에 천재적인 통찰을 보여주는 소녀 토마시나와 가정교사 셉티머스가 학문을 탐구하는 19세기의 모습, 그리고 같은 저택에서 이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현대 연구자들을 교차시키며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육욕적인 포옹이란 게 뭐야?” 이야기는 토마시나의 질문과 그에 대한 셉티머스의 눙치는 답변으로부터 시작해 시공간을 넘나들며 정교한 퍼즐처럼 맞물려 전개된다. 19세기 시들리파크에선 셉티머스의 친구로 설정된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과 저택 거주자들 사이의 소동극이 펼쳐지는 한편, 토마시나가 시대를 앞질러 카오스 이론,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과 같은 개념을 깨닫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현대의 인물들은 바이런에 얽힌 미스터리를 좇는 동시에 토마시나와 셉티머스의 흔적을 더듬으며 인간 존재 더 나아가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게 된다.
연극 <아르카디아>는 영국 시골의 시들리파크라는 대저택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무대에는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만 놓여 있다. 관객들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인물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지켜보게 된다. 스토리포레스트·파크컴퍼니 제공
연극 <아르카디아>는 영국 시골의 시들리파크라는 대저택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스토리포레스트·파크컴퍼니 제공
객석을 사이에 둔 무대에는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만 놓여있다. 무대는 단촐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쏟아내는 과학, 철학, 문학, 역사, 예술, 사랑에 대한 깊이있는 질문은 관객들을 이야기로 몰입시킨다.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구조를 관통하는 상징은 ‘엔트로피’다. 열은 차가운 곳으로 가고, 시간은 흐르며 되돌릴 수 없다는 자연의 법칙은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확장된다. 극에서 암시되는 토마시나의 비극과 맞물려 애틋한 여운을 남긴다.
영국 유명 극작가 톰 스토파드가 1993년 발표한 이 작품은 묘하게 2014년 나온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리게도 한다. 영화에서 블랙홀 내부의 쿠퍼가 과거의 자신과 딸에게 신호를 보내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연극과도 겹쳐져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이중 시간대로 전개되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무대 위에서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이 함께 존재하게 된다.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연출이 아름답다.
<아르카디아>는 “우리가 중요해지는 건,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야”라고 과학적 탐구에서 삶의 의미를 끌어낸다. “우리는 모두 사라질 운명이라는 거지.” 시간은 결코 거스를 수 없고 모든 것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사랑과 삶의 흔적들은 남게 된다. 그리고 특정한 순간, 특정한 공간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8월3일까지.
고전주의 화풍을 확립한 니콜라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자들(Et in Arcadia Ego)’. 이상향을 뜻하는 아르카디아의 목동들이 무덤을 발견하며 죽음의 불가피성을 깨닫는 장면을 우의적으로 그렸다.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