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산책
심명자 지음·윤여준 그림
찰리북 | 52쪽 | 1만6000원
바삐 움직이는 짧은 다리에 보폭을 맞추고, 익숙한 길을 나란히 걷는다.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순간. 하루하루 다를 것 없이 흘러가지만 우리만의 계절이 쌓여간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산책’이란 이런 시간이다.
강아지가 다친 다리로 흙길을 걷고 있다. 마음껏 먹고 뛰노는 꿈을 꾸는 이 강아지는 어느 노부부를 만난다. 그리고 ‘건이’라는 이름도 생긴다. 나무에 새잎이 나면서 건이의 상처에도 새살이 돋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산책도 나가기 시작한다. 마음껏 달릴 때 들리는 콩콩 심장 박동 소리, 뒤돌아보면 늘 따라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에 건이는 행복하다.
책장마다 색연필의 결을 살려 부드러운 색감을 채운 삽화는 건이와 노부부의 따뜻한 산책길을 보여준다. 초록 잔디밭 위 흩날리는 붉은 낙엽, 그리고 그 아래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발라당 누워 있는 건이가 앙증맞다. 집에 돌아온 건이는 좋아하는 할아버지의 양말로 축구를 하고, 베개 삼아 잠도 청한다. 할머니는 그런 건이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다. 함께 보내는 일상은 평화롭다.
그러던 어느 날 병세가 깊어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슬픔에 빠져 일어날 수 없는 할머니의 등 뒤로 건이는 할아버지의 양말을 하나 둘 물어다 둔다. 할머니는 문득 예전에 찍어둔 할아버지의 영상을 재생한다. 영상 속 할아버지가 말한다. “건아, 산책 가자!”
한 사람의 발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지만, 남은 둘은 다시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심명자 작가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뒤에도 용기 내 걷는 이들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윤여준 작가의 섬세한 그림으로 살아난다. 책 말미에서 할머니와 건이는 아직 걷기 예절도 모르는 새 식구를 맞이한다. 이들의 산책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단단하고 다정한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