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번 드나드는 화장실. 그곳에 우두커니 걸린 수건을 보며 쓴 시가 있다. “거실 화장실 수건은 늘 아내가 갈아 두는데/(…)/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태워 버리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낡은 수건 하나가(…)/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소멸에 대하여1, 이성복)
저 ‘무시 못할’ 수건에서 소멸을 길어 올리는 어마무시한 시에는 그 수건을 어느 기념식에서 받아온, 이제는 돌아가신 ‘도포에 유건 쓴 우리 아버지’와 ‘강서구청 총무국장인 우리 장인어른’이 등장하는데, 오늘은 그 구절을 훔치며 나도 장인어른에 관한 생각 하나를 덧대본다.
장인어른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지 어느덧 30여년. 장모님 병원에 누워 계시고 홀로 일상을 다스리는데 가끔 안부도 살피고 말벗도 해드릴 겸 춘천으로 찾아뵌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장인께서 강원도의 벽지학교를 전전하신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주문진, 화천, 양구, 정선, 철원, 동송 그리고 춘천. 강원도의 저 따끔한 고장이야말로 북두칠성 같은 일곱 별자리. 그곳에 누적된 시간을 합산하면 그대로 당신 일생의 반이 아닌가.
요즘 소소한 재미는 그 예전 근무지를 하나씩 가보는 것이다. 젊은 날 아이들과 함께했던 장인어른의 황금 시절이 고여 있는 곳. 뭐 하러 그리 먼 길을? 사양 먼저 하지만 멀리 교문이 보이면 가벼운 흥분을 숨기지 않으신다. 최근에는 화천읍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상서면의 산양초등학교를 찾았다. 이제는 고등어처럼 날렵하지만 옛날에는 발등을 퉁퉁 붓게 하던 길. 아는 이 아무도 없지만 거의 그때 그대로일 운동장에서 긴 그림자 자르지 않고 사진도 몇방 찍었다.
여기에 다시 오는 날이 있을까. 그때도 오늘처럼 셋이 함께할 수 있을까. 장인어른의 시간처럼 나중 이곳과 관련한 기억의 고리를 하나 만들고 싶었다. 군인들도 많아 제법 발달한 거리에 큰 간판이 있다. 삼일서점. 널찍한 매대에 시골책들이 활짝 누워 있다. 두 권을 골랐다. 100개의 별을 다룬 것과 내 중학 시절로 연결되는 프랑스 소설. 북두칠성 국자 끝에 별 두 개를 덧대는 기분을 내며 화천을 떠난다. 다음은 철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