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청와대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일터가 청와대와 지척인 까닭이다. 한국에서 대통령 집무실 앞은 이런저런 문제를 대통령이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모이는 장소가 된 지 오래다. 남태현 교수는 2018년 ‘대통령만 바라보는 시민들에게’라는 칼럼으로 대통령 개인에 기대는 정치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나아가 “아직도 덕이 많은 군주 덕에 태평성대가 오고, 폭군 때문에 난세가 오는 중세에 사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그의 성찰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듯하다.
대통령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요동치고 평가가 갈린다. 우리 정치에서 대통령은 최종심급이자 메시아의 지위를 가진다. 수년간 해결이 요원하던 사안이 대통령에 의해 풀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운동도 대통령을 향한 운동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인민 사이를 매개하던 여러 대표, 예컨대 언론·시민사회·정당은 더는 필요하지 않거나 기능적 부속물 정도로 축소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숙의하고 합의하는 정치보다 단숨에 해결하는 정치에 환호한다.
대통령만 바라보는 구조가 쌍방에 의해 공고해질수록 우리 정치의 불안정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만 관용이나 권한의 자제는 대통령 개인의 기질과 의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리고 우린 지난겨울 그 대가를 호되게 치르기도 했다. 우린 대통령 자체에 파괴적인 불안정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는 죄가 없다며 ‘좋은 대표를 선출하자’고 말할 뿐이다. 게다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상대편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활용돼왔을 뿐이라는 김일년 교수의 지적처럼 대통령 권력 집중 문제는 정파적 이해에 따라 은폐되기도 한다.
대통령에게 조국 전 의원을 사면하라는 지식인들의 탄원이 빗발친다고 한다. 사면은 “대통령이 국가원수의 지위에서 행하는 사법상 은전(恩典) 조치”다. 여기서 은전이란 나라님이 베푸는 은혜를 뜻한다.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베푸는 초법적 사면행위는 민주공화국에 불필요하다. 개인의 사면 여부를 논하기 전에 대통령 권한의 측면에서 사면 자체가 올바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윤석열이 대통령으로서 지난 3년간 온갖 종류의 사인들과 벌인 위헌·위법적 행위 일체, 즉 ‘윤석열 사태’라 부를 만한 사건에서 한두 발이라도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대통령 그 자체를 민주화해야 한다. 공사가 엄격히 분리되고, 권한 행사가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견제·감시의 장치를 중층적으로 쌓아야 한다. 아쉽게도 이를 위한 제안과 토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 일이 한 개인의 사면을 대통령에게 청하는 일보다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이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