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열린 ‘돈의문골목시장’ 행사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서울시 돈의문박물관마을 홈페이지
서울시가 대법원의 ‘사용허가 갱신 거부처분 집행정지’ 결정 이후에도 돈의문박물관마을의 민간위탁 사업자에게 명도소송과 고액 변상금을 부과해 퇴거를 압박한 사실이 확인됐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서울시가 위탁 운영을 민간에 요청해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혀왔다. 서울시가 공원화 사업을 하겠단 이유로 상인들을 무리하게 내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인 2021년 4월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 활성화를 위해 편익시설 사업자 ‘시니어벤져스사회적협동조합’에 위탁 운영을 제안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박원순 전 시장이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이었다. 33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2019년 말 코로나19 확산으로 방문객이 급감해 ‘유령 마을’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조합 측은 ‘3년 계약’에 더해 ‘2~3회 연장’을 해주겠다는 당시 서울시 관계자의 말을 듣고 사업에 뛰어 들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장사가 쉽지 않았지만 조합은 약 2억원을 들여 공간도 개선했다. 2023년 기준 주말 하루 관람객이 7000~8000명 수준으로 늘었다. 서울시도 ‘공공성 활성화의 대표 사례’로 홍보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서울시는 사업자들에게 사전 협의 없이 “3년 계약이 끝났으니 퇴거하라”고 통보했다. 3년 계약 만료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현장 점검을 실시해 ‘점수 60점 미만은 계약 갱신 불가’라는 기준을 적용하기도 했다. 마을 내 모든 운영자가 기준 점수를 넘기자 계약 종료를 근거로 들어 퇴거 방침을 유지했다. 서울시는 이달 말부터 마을을 폐쇄하고 녹지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조합은 서울시의 통보가 신뢰보호 원칙을 위배한 행정 처분이라며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이를 인용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 6월 운영자들을 ‘무단 점유자’로 규정하고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기존 임대료 대비 10배에 달하는 변상금도 부과했다. 현재 돈의문마을 내 시민사업 운영자 4곳 중 1곳은 자진 퇴거했고, 나머지 3곳은 서울시와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은 공유재산법 21조 4항에 따라 사용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조항은 재난 상황일 경우 사용허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합 측은 3년 계약 중 2년을 코로나19 상황에서 운영했고, 이는 연장 사유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이 업체가 입주한 2021년 6월은 코로나19 초기처럼 강한 제한 시기는 아니었다”며 재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유재산은 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허가 연장은 가능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라며 “행정상 사정에 따라 계약 종료 시 원상 복구 후 퇴거가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공유재산 임대 계약 연장이 무조건 보장된다면 공공사업이 진행될 수 없고, 혜택에 따른 공정성 문제도 있다”고 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운영자 입장에서는 재계약 보호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라며 “서울시도 자발적인 투자와 운영을 유도해온 만큼 최소한의 보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약이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민간 운영자를 단번에 내쫓는 것은 행정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공공의 계획 변경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퇴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이주 대책이나 보완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4일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 입구에 전시 관람 종료 안내문이 붙어있다. 백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