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은 증거의 왕’이라는 말이 있다. 피의자가 범죄를 인정하는 것만큼 명백한 유죄 증거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백이 곧 유죄는 아니다. 자백을 뒷받침하는 물증·정황이 있어야 한다. 수사기관의 강압 때문이건 다른 이유로건 허위 자백을 할 수도 있어서다. 자백은 혐의를 완결성 있게 입증하기 위해 찍는 ‘마지막 점’에 가깝다는 뜻이다. 증거·정황이 충분하면 자백 없이도 유죄가 선고된다.
수사기관이 자백이나 협조적 진술을 받아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독재정권 때 주로 사용한 수법은 고문이었다. 인간을 정신적·신체적 한계의 극단까지 몰아붙여 사건을 조작하고, 없는 죄도 만들어냈다. 민주화 이후 검찰은 별건·가족·지인 수사로 피의자를 압박해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오래전 얘기지만, 사무실에 ‘자백만이 살길이다’라는 문구를 걸어놓은 검사도 있었다고 들었다. 미국에는 유죄를 인정하거나 협조적 증언을 하면 형량을 줄여주는 플리바게닝(사전형량조정제도)이 있다. 한국에는 이 제도가 없지만,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지금도 음성적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두 불법·편법이다.
바람직한 건 수사기관이 증거를 탄탄하게 확보해 피의자가 자백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피의자와의 ‘라포(rapport)’ 형성이다. 심리학에서 ‘상호 이해와 공감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관계와 유대감’을 뜻하는 라포는 ‘다리를 놓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화성연쇄살인 사건 범인 이춘재가 2019년 범행을 자백한 데는 프로파일러들의 라포 형성이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12·3 비상계엄 기획자’로 불리는 노상원씨를 지난 4일 제3자 내란방조 의혹의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박지영 특검보는 당일 브리핑에서 “(노씨) 진술을 끌어내려면 여러 라포 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른바 ‘노상원 수첩’에 적힌 북풍공작 및 야당·시민단체·언론계·종교계 인사 참살 구상의 실체를 온전히 밝히려면 노씨 진술이 필수적이다. 조 특검은 검사 시절 라포 형성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외환죄에 관한 한 진술거부권을 행사 중인 노씨의 입이 열릴지 주목된다.
‘12·3 비상계엄’ 기획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2월24일 오전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