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7월26~31일 엿새 동안 4명의 여성이 교제폭력으로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고, 6월엔 대구·부평, 5월엔 동탄에서도 사건이 잇따랐다. 피해자의 보호 요청을 외면한 수사·사법기관의 안이한 대처와 제도 허점이 반복된 비극의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10일 경찰청이 교제폭력에 대응하는 ‘종합 매뉴얼’을 전국 경찰에 하달했다. 매뉴얼은 교제폭력 사건에 직권으로 개입해 피해자 보호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조치가 여성폭력 사건을 선제적으로 뿌리 뽑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지난해 교제폭력으로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에 시달린 여성이 374명, 주변인까지 포함하면 650명이라고 한다. 교제폭력 피해자가 하루 2명꼴에 이른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 보호조치를 받는 중 교제폭력으로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한 피해자(주변인 포함)가 114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반의사불벌죄가 폐기됐음에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거나, 보호조치 중에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지 않겠다고 한다”며 미온적으로 대처해 온 수사 관행이 끔찍한 현실을 키운 셈이다.
그런 점에서, 경찰의 ‘교제폭력 대응 종합 매뉴얼’은 늦었지만 바람직하다.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최고 수준의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겠다”며 교제폭력을 스토킹범죄에 준용하겠다고 밝혔다. 법 규정이 없는 교제폭력을 ‘상대 의사에 반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행위가 반복되면 제재·처벌하는 스토킹범죄와 동일시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폭력 신고 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거나, 일회성 폭력이라도 지속될 경우엔 가해자에 대한 접근금지·체포가 가능해진다. 피해자·가해자 분리, 가해자 제재가 시급한 여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고려한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한다.
그러나 경찰 대응만으론 교제폭력 비극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더 이상 여성의 폭력 피해와 죽음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국가적 실행 의지가 중요하다. 검찰·법원은 교제폭력 위험성을 제멋대로 해석해온 행태를 반성하고 전향적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는 피해자 보호 종합대책을 마련해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야는 교제폭력 행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스토킹 피해자 범위를 확대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서둘기 바란다.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교제폭력 범죄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