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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는 노동체계 불평등의 바로미터

입력 2025.08.10 21:10

수정 2025.08.1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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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휴가에서 돌아온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통령실이 긴급 브리핑을 했다. 앞으로는 산재 사망 사고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라는 것, 고용노동부가 산재 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 사항을 다음 국무회의에서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산재 대책을 두고 1시간 넘게 토론하는 모습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노동·시민 단체들이 20년 넘게 줄곧 제기해왔던, 하지만 응답이 없었던 노동자 사망 문제가 이렇게 정부 최고기구에서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약간 감격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이는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재는 기업의 살인”이라는 우리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대통령은 안전을 포기함으로써 절감한 비용보다 사고 발생 시 지출하는 대가가 더 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노동자의 사망 위험을 감수하는 게 기업의 이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동·시민사회가 그동안 목청을 높여왔던 핵심 주장이다. 정부는 산재 사망에 대해 형사처벌만이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 공공입찰 참여 제한, 영업정지 같은 경제적 제재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최근 연속적으로 산재 사망이 일어난 포스코이앤씨에 대해서는 건설면허 취소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 건설 현장에서 산재로 인한 영업정지 기준을 동시 2명 사망에서 1명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동안 어떤 정부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라 기대가 크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도 크다. 기업들, 이들의 동맹군인 정치 세력과 언론의 거센 반대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앓는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를테면 “산재 사고 때문에 수만명 생계 달린 회사를 문 닫으라고 하나” “사망 땐 면허 취소면 10대 건설사 다 문 닫아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사는 역설적으로, 이들은 여전히 수만명 생계를 위해서라면 몇명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포스코이앤씨만이 아니라 10대 건설사 모두 문제가 심각하구나 하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인신공양을 통해 에밀레종을 완성했던 대장장이의 전설이 왜 21세기 한국의 건설회사들에 의해 재현되어야 하는지 그저 의문이다. 소셜미디어는 한층 더 혼란스럽다. 포스코가 아닌 다른 기업에 특혜를 주기 위한 노림수, 한국의 경쟁 기업을 무너뜨리려는 중국의 지령이라는 음모론까지 폭주하고 있다. 중국을 이기려면 계속 노동자를 죽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산재가 생산 방식의 일부로 이미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이를 분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휘감고 있는 스펑나무를 함부로 베어내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세상이 떠들썩하면,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단 며칠은 산재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 같은데 그조차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문제가 생산 구조 그 자체와 얼마나 뿌리 깊게 얽혀 있는지 보여준다.

기업의 안전보건 담당 부서에서 아무리 애를 쓴다 한들,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는 개선되기 어렵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 이를 낳는 복잡다단한 원하청·하도급 체계와 불법을 넘나드는 파견 노동,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한 고용허가제라는 물길. 위험이 흘러내려가는 수로(水路)를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투입해도 목표에 가닿을 수 없다. 산재는 불평등한 노동체계, 생산체계의 결과물이다. 정부는 지금 추진하려는 산재 예방 정책들과 더불어, 이렇게 위험이 흘러내리는 물길의 구조를 바꾸는 데 더욱 담대하고 끈질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
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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