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놀데. 세계적 명성을 떨친 바 없지만, 우연히 만난 그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감, 게다가 신념에 찬 듯 거침없는 붓터치는 박진감 넘친다. 언뜻 고흐와 루오의 화풍이 중첩된 것 같은 작품은 기운차면서도 왠지 기름져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가 살던 북유럽의 자연과 철학이 투영된 것처럼 색채의 ‘질풍노도’였다.
수십년 전 어느 봄날, 나는 독일과 덴마크 국경 근처 제뷜의 ‘놀데미술관’을 찾았다. 북해 끝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과 산들바람, 형형색색 꽃들과 나지막한 언덕에 엎드린 소박한 미술관.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풍광을 잊을 수 없다.
정원의 여러 꽃을 그리면서 색감의 미묘한 차이와 심도를 오랫동안 실험했다는 그는 일명 양귀비 화가로도 불린다. 그가 자주 그린 양귀비(숙근양귀비)는 기운생동하여 에너지를 내뿜는다. 가녀린 양귀비가 그의 붓이 닿으면 불꽃이 된다. “색에는 영혼이 담겨 있다”는 그의 말이 실감 났다. 그는 붉은색이 피와 불을 상징한다고 했다. 붉은 양귀비로 자신의 의지와 열정을 묘사한 것일까.
그 당시 나는 왜 그리 색감이 강렬하고 야릇한지, 또 그토록 화려하면서도 적적한지 알지 못했다. 나치 정권에 철저히 배척당한 퇴폐 예술가로 비난받던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저항 인물로 주목받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에도 여러 번 초청되었다.
그의 작품에 대한 내 감상이 여기까지였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는 이념적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했으며, 자신의 표현주의가 나치 국가의 예술 형태로 자리 잡기를 고대했다고 한다. 더구나 1945년 이후 그의 반유대주의와 나치 이념 수용 전력이 드러났음에도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를 숨기려 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념이 나치 핵심 슬로건이었던 ‘피와 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화사한 양귀비꽃들이 마냥 감동적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꽃만 보았지, 이념은 보지 못했다.
놀데의 이념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던 2019년, 당시 독일 총리였던 메르켈은 베를린국립미술관에서 대여해 수년간 자신의 집무실에 걸어놨던 그의 작품을 반환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과 일본을 다녀갔던 놀데를 생각하며, 광복 후 밝혀진 우리 유명 예술인들의 구차한 행적이 떠오른다. 이념을 배제하고 예술을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에겐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