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발전사들 상대 1인당 ‘500만2035원’ 청구
“농촌서 풍년 사라져···기후변화에 가장 큰 피해”
기후환경단체 관계자들과 농업인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온실가스 누적 배출 1위 기업인 한전과 발전자회사를 상대로 농업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효진 기자
경남 함양에서 15년째 사과 농사를 짓는 마용운씨는 그간 일궈온 2ha(헥타르·약 6000평)에 달하는 사과밭이 짐처럼 느껴진다. 원래 5월초 쯤 피던 사과꽃이 기온 상승으로 최근에는 4월 초에 피고, 중간에 꽃샘 추위라도 오면 냉해 피해도 심각하다. 봄을 견뎌낸 사과도 여름 폭우에 썩는 병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수확량이 줄었다. 마 씨는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농민”이라며 “더 이상은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로 생업을 지키기 어려워진 농민 6명이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인 한국전력과 산하 5개 발전공기업을 상대로 기후위기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12일 밝혔다. 폭염과 가뭄, 폭우 등 이상 기후로 입은 농작물 피해는 기후위기를 부른 기업이 물어내야 한다는 취지다. 국내 농업 분야의 기후 피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첫 민사소송이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11~2022년 기간 동안 한전과 발전사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연평균 23~29%를 차지한다. 한전과 발전사는 전체 발전량의 95% 이상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석탄 발전 비중만 71.5%에 이른다.
기후환경단체 관계자들과 농업인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온실가스 누적 배출 1위 기업인 한전과 발전자회사를 상대로 농업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효진 기자
이번 소송에서 농민 1인당 청구액은 500만2035원이다. 500만원은 재산상 손해의 일부로, ‘2035원’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위자료로 책정했다. 기후솔루션은 “2035원은 현 정부의 2040년 탈석탄 목표보다 앞선 2035년까지의 석탄발전 퇴출을 요구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농민은 기후위기를 최일선에서 마주하는 당사자다. 한반도의 최근 30년(1991~2020년)간 평균기온은 1912~1940년 평균과 비교해 1.6도, 강수량은 135.4㎜ 증가했다.
극한 폭염과 폭우 등 이상 기후로 농작물 피해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충남 당진에서 35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황성열씨는 “농촌에서 풍년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지 5년이 됐다”며 “병충해와 폭우, 폭염 피해로 벼 수확량이 줄고 품질이 떨어져 생계가 위태롭다”고 말했다.
경기 이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하는 송기봉 씨는 기후변화로 복숭아순나방이 창궐해 나무를 베어냈고,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윤순자 씨는 온난화로 ‘제주 감귤’ 경쟁력이 사라져 손해를 봤다. 경남 산청 이종혁 씨의 딸기 하우스는 폭우로 물에 잠겼다.
이번 소송을 진행하는 임두리 변호사(기후솔루션)는 “농업인은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며 “이번 소송을 계기로 농업인들이 기후 피해를 입는 현실이 더 많이 알려지고, 한전과 자회사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이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