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워싱턴 특파원 3년 임기 내내 맞닥뜨린 화두는 ‘중국’이었다. 정확히는 미국의 관점에서 보는 절반의 중국이겠지만, 미국 국가안보와 경제안보 차원의 최대 도전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워싱턴 정가의 경각심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중국은 한·미관계를 취재하는 현장에서도 따라다녔다. 한·미 동맹을 주제로 한 싱크탱크 세미나에서 대북정책보다 대중정책이 비중 있게 논의되는 것은 예사였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법 등 미국이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며 발표한 조치들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었지만, 한국 기업들에까지 유탄이 날아들었다.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처지를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동맹과의 공조를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전략을 내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한국의 대중 노선이 시험대에 오르는 일도 잦았다. 미국은 ‘디커플링 아닌 디리스킹’ 기조에 따라 중국에 대한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첨단기술 수출통제를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동맹들에도 대중 수출통제 동참을 요구했고, 한국은 이에 대비해 내부 법령을 개정했다. 안보 분야의 압박도 거셌다. 미국이 주도한 한·미·일 협력체제 격상은 한국이 중국 위협과 관련해 미국과 인식·대응에서 보조를 맞추도록 제도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관세 협상에서 한국, 일본 등 동맹을 강탈(shakedown)에 가깝게 압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강경한 것처럼 비친다. ‘관세 휴전’의 추가 90일 연장, 엔비디아의 저사양 AI칩 H20 대중 수출 재개, 대만 총통의 미국 경유 불허, 틱톡금지법 시행 연기 등은 중국과의 거래를 선호하는 트럼프 스타일이 반영된 행보다. 하지만 트럼프식 전술이 당장의 미·중관계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중국을 ‘유일한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미국의 장기 전략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동맹들이 중국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나타내도록 압박하는 흐름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중 한쪽을 택하라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아시아 국방 수장들에게 ‘안미경중’ 행보에 대해 경고했다.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에게 대만해협 유사시 할 역할을 밝히라는 요구를 받은 호주와 일본은 “가정적 상황”이라고만 답했다.
오는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제기될 것이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는 통화에서 “미국은 대만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에 선명성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이 중국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다”고 전망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검증대에 오르는 셈이다. 한·미 무역 합의 초안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의 지지 표명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도 나왔다.
워싱턴에서 ‘중국 문제’를 접할 때마다 한국이 미·중 사이 좌표 설정 없이 사안별로 대응하다가는 결국 한계에 봉착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위기가 늘 요란하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트럼프의 공세로부터 국익을 지켜내면서도 미·중 갈등의 파고를 넘을 전략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