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16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재명 정부의 첫 고비는 예상대로 ‘인사(人事)’였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한 불리함도 있지만, ‘실용’을 국정과 인사 지표로 앞세웠을 때 예감은 불길했다. 흠 없는 지도층 인사들이 드문 현실과 정책 자질보단 도덕성이 전시되는 인사청문회가 오버랩되면서 ‘또 칼춤을 보겠구나’ 했다. 예감대로 장관 후보자 두 명을 포함해 4명이 낙마했다. 과거 막말에 발목 잡힌 한 차관급 인사는 꾸역꾸역 직을 이어갈 태세지만 정권의 내상이 작지 않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새 정부 인사가 (그래도) 정정 메커니즘은 작동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만으로 ‘다행이다’ 하기엔 되풀이되는 인사 난장이 눈에 밟힌다. 인사 시스템에서 고칠 부분은 없을까. 언제까지 ‘내로남불’의 여야 공수 교대를 반복할 것인가.
인사는 어느 정권이나 ‘인재풀의 한계’라는 현실적 조건이 작동한다. 조선시대 당쟁이 조정 인사권에서부터 시작됐듯, 진영 다툼이 심한 정치문화일수록 풀은 더욱 협소해진다. 그래서 인재풀을 얼마나 넓히느냐가 인사 평가의 관건이 된다. ‘깜짝 인사’의 파격이 주목받는 건 그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은 파격이었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 인사실패 책임을 분명히 한 것도 그동안 없던 관행 파괴였다. 하지만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정리를 미적거려 ‘측근 불패’ 수렁에 빠진 건 낡은 행태의 답습이었다. 떨어질 줄 모르던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율마저 꺾였다.
이쯤되니 여당에선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 검증 인사청문을 하자는 제안이 리메이크 가요처럼 흘러나온다. 공감하는 점도 있지만, 방안 자체는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야당과 국민 절반이 동의하지 않는다. 도덕성과 정책 역량의 경계가 딱 떨어지게 나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실상 도덕성 의혹 대부분은 인사청문 무대 밖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제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사청문이 ‘도덕군자’를 뽑자는 것은 아니다. 도덕군자가 공직에 최적화된 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플라톤이 말한 ‘철인’도 도덕군자는 아니다. 사적 이해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이성과 논리로 ‘공(公)’을 이룰 수 있는 이를 의미한다. 공직 도덕성은 결국 공사를 명확히 가릴 줄 아는 분별력에 방점이 있다. 인사청문에서 도덕성이 중요한 이유도 분별력을 가늠하는 데 도움 되기 때문이다. 콩 심은 데 콩 나듯 지금까지 입신출세에만 목매던 이가 갑자기 이타적인 공복이 되긴 어렵다.
현실로 돌아가 도덕군자가 많지도 않지만 있다해도 꼭 최적이 아니라면, 감내할 만한 도덕성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정도’라는 말의 모호함처럼 그 감각은 천차만별이다. 대상 공직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부하를 위할 줄 모르는 리더십은 국방·안보 공직엔 절대적 결격사유지만, 경제·산업 관련 공직은 좀 다를 수 있다. 부하(박정훈 대령)를 희생시켜 자기 안위 도모에 급급했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무자격인 것처럼 말이다.
정치가 인사의 합리적 기준을 토론하고 세울 필요가 있다. 첫번째로 그 공직의 본질에 반하는 도덕적 의혹은 아무리 작은 흠결이라도 용납해선 안 된다. 금전에 대한 민감성은 세제·예산 같은 국가 자원 배분을 다루는 공직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이명박·윤석열 정부 인사들이 그러했듯 투기·투자에 능하고 자산이 많은 장관이 관련 세금을 낮춘다면 흑심을 의심하지 않겠는가. 반면 정치 공방 대상으로 전락한 위장전입이나 농지법 위반은 디테일을 따져 용인해선 안 될 경우만 네거티브로 규정하는 게 나을 것이다.
두번째는 정권들이 도덕성 의혹의 엄폐물로 삼아온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아무 성과나 단순 경력을 전문성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갑질’이 가볍지 않은 건 그것이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강압과 독선으로 쥐어짜 만든 성과가 온전할 리 없다. 인사를 다루는 수장이 좁은 지식으로 편견에 차 있다면 고르게 인재를 평가하겠는가.
세번째로는 도덕성과 정책 철학이 겹쳐지는 영역은 반드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대표적으로 공직 후보자의 말과 글, 행동이다. 거기에 인간적 품격은 물론 정책과 국정에 대한 바른 판단과 분별력이 담겨 있다.
이런 정도 원칙에 정치권이 합의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관직을 정권의 전리품이나 파당의 여물통쯤으로 여기려는 심산이 아니라면 말이다. 부디 인사청문이 정국 주도권 다툼 도구로 분칠되지 않고, 인사 기준 설정의 공론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