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복수의 보도 매체가 “서울에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그만두는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강남 3구”라는 기사를 냈다. 고등학교 학업중단율이 강남구와 서초구가 각각 2.7%였고 송파구가 2.1%였다는 것이다. 또한 “강남 3구의 학업중단율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2021년 1.4%에서 지난해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매체도 고교 학업중단율 전국 평균이 2.1%라는 점을 말하지 않았다. 송파구는 단지 평균일 뿐이며, 강남구와 서초구도 평균에서 그리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전국 평균 자체가 2019년 1.7%에서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 1.1%로 급감했다가 2021년 1.5%, 2022년 1.9%로 오른 점도 눈감았다. 말하자면 강남 3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보도 매체들의 속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학교 교육을 파행화하는 수능의 부작용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미 수능을 향한 N수 비율이 기형적으로 높은 강남 3구에서 ‘수능 올인’을 위해 잇따라 자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부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며, 부유층 자제들이 고교 과정을 어떻게 이수할지는 그들의 선택일 수 있다. 반면 학업중단의 진짜 문제는 왕따나 학교폭력, 장기 질병, 가난, 장애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나야 했던 이들이다.
학업중단이란 특정 기간 학교를 그만둔 학생 수를 전체 학생 수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그런데 아예 처음부터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거나 접근 자체가 어려운 경우는 이 수치에 잡히지 않는다. 이를 포착하기 위한 또 하나의 숫자가 취학률이다.
취학률은 해당 연령 전체 가운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숫자를 계산하는데, 고등학교 취학률은 재적 학생 수를 해당 인구수(고등학교의 경우 만 15~17세 총인구수)로 나눈 후 100을 곱해 구한다. 이렇게 계산한 한국의 고등학교 취학률은 93.9%로, 약 6%의 해당 연령 인구가 제때 정규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 물론, 이들이 그대로 중졸 이하 학력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늦깎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검정고시를 본 사람들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대체할 또 다른 숫자가 교육 이수율이다. 이수율은 성인이 된 후 연령대별로 학력 취득 비율을 따진다. 예컨대 유럽에서는 18~24세 인구 가운데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을 ‘교육·훈련 조기 이탈자’(early leaver from education or training)라고 부르는데, 2024년 평균 9.3%가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고 학교를 일찍 떠났다. 남성이 10.9%로 7.7%인 여성을 압도한다. 국가별로는 루마니아 16.8%, 독일 12.4%, 프랑스 7.7% 등이다.
한국의 경우 202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통계에서 25~34세 연령대의 고등학교 이수율을 파악할 수 있는데,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은 인구는 남성 2%, 여성 1% 정도였다.
이렇게만 보면 한국의 고등학교 이수율은 세계적으로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정 정도 거품이 끼어 있다. 한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위해서 졸업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 기준에 맞지 않아 조기 이탈하는 경우가 꽤 있다. 마투라, 바칼로레아, 아비투어, 일반중등교육자격시험(GCSE)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모두 졸업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시험이다. 시험에 탈락하면 졸업할 수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출석일수만 채우면 대개 졸업을 시킨다. 졸업자격시험 자체가 없다. 2023년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교 기초학력 미달률이 국어 8.6%, 수학 16.6%, 영어 8.7%에 달한다. 원칙대로라면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이 어려운 집단이다.
이를 포함하면 우리의 고등학교 이수율은 최소한 8% 이상 낮아진다. 거의 유럽과 맞먹는다. ‘강남 3구’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상위 혹은 최상위층 학생들의 성취도나 변별력에만 너무 신경을 써왔다. 그것도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들만의 수능, 그들만의 변별력, 그들만의 공정성이 교육 담론의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만 주목하는 동안 교육의 사각지대에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우리의 귀한 자식들이 있다. 인구절벽 시대에 이들도 우리 사회의 귀한 인재들이다. 학교는 이들에게 더 필요하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