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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광복 80주년에 맞춰 출간된 <김규식과 그의 시대>는 현대사 연구자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의 역작이다.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 이후 구미위원부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이승만의 제의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실제로 했던 일은 공채표를 미국 지역 한인들에게 판매하는 "세일즈맨"에 가까웠다.

파리강화회의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김규식은 미국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회복했으나 이승만은 병문안은커녕 안부도 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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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세계인’ 김규식의 가려진 삶을 좇다

입력 2025.08.14 21:14

수정 2025.08.1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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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식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파리강화회의 활동을 도와준 사람들과 김규식(앞줄 오른쪽). 돌베개 제공

파리강화회의 활동을 도와준 사람들과 김규식(앞줄 오른쪽). 돌베개 제공

호피 의자 위 화려한 다섯 살 소년
사실은 미 선교사업 홍보용 연출
16세에 정치적 기반 없이 미 유학

파리강화회의서 각국 냉대 경험
임정 부주석 지냈지만 애증 짙어
이승만에 배신감 탓 등 돌리기도

10년간 1872쪽 분량으로 풀어낸
‘성공하지 못했지만’ 불꽃 같은 삶
“그의 평전, 일생의 도전 같은 일”

우사 김규식(1881~1950)은 해방 공간에서 이승만, 김구와 함께 ‘우익 3영수’로 꼽혔던 인물이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단기필마의 외교전을 펼쳐 3·1운동의 불씨가 됐고 임시정부에서 부주석까지 지냈으나 이승만, 김구, 여운형 같은 거물들에 가려져 생애와 활동이 학계의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 “김규식은 성공과 실패가 분명치 않은 길을 걸어간 사람인 데다 정치적 추종자를 거느리지 않은 외로운 존재였고, 납북되어 사망함으로써 정치적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

광복 80주년에 맞춰 출간된 <김규식과 그의 시대>(전 3권)는 현대사 연구자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의 역작이다. 저자는 10년 가까운 집필 기간을 거쳐 도합 187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평전을 내놨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정치적 성패로 따지자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역사이지만 그 삶 속에 담겨 있던 진정성과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열정의 순간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다면서 “김규식의 평전을 쓴다는 것은 일생의 도전과 같은 일이었다”고 밝힌다.

[책과 삶] ‘외로운 세계인’ 김규식의 가려진 삶을 좇다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정병준 지음 | 돌베개
1권 520쪽, 2권 560쪽, 3권 800쪽
1·2권 각 3만5000원, 3권 5만원

책은 김규식의 생애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1권(1881~1918년)은 유년기, 미국 유학 시절, 중국 망명과 독립운동 투신 등의 사건을 담았다. 2권(1919~1921년)은 파리강화회의 참석, 1인 외교투쟁, 미국에서 이승만과의 만남과 갈등을 다룬다. 3권(1922~1945년)에서는 러시아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와 국민대표회의, 중국인들과의 항일 연대, 민족혁명당 가입과 임시정부 부주석 재임 시기를 살핀다.

1권은 김규식이 다섯 살 때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사진 속에서 김규식은 좋은 옷을 입고 호피 가죽을 두른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만 보면 부유한 집안의 도련님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을 것 같지만, 실제 김규식의 유년기는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모친 사망 후 부친이 유배되고 친인척들마저 양육을 포기해 사실상 고아가 된 김규식은 언더우드 목사의 고아원에서 자랐다.

5세 무렵의 김규식.

5세 무렵의 김규식.

호피 의자에서 찍은 사진은 김규식이 언더우드의 집에서 우대받았다는 증거와 거리가 멀다. 저자가 미국까지 가서 발품을 판 끝에 확인한 사실은 이 사진이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본부 홍보용 팸플릿에 실렸다는 점이다. 가난한 동아시아 국가의 고아를 화려하게 치장시켜 미국 장로교의 선교사업 홍보에 활용한 것이다. 이 사진이 촬영된 구체적 맥락은 이 책에서 처음 밝혀졌다. “한국에서는 김규식에 대해 일반적으로 언더워드의 양육을 받은 친미 기독교 노선의 신봉자, 파리강화회의 외교노선의 선구자, 이성적 합리주의자, 좌우합작·남북협상의 지도자 등 화려한 수식어가 앞서지만, 그 유년기는 비감하고 위태롭고 흔들리는 상태였다.”

김규식은 16세이던 1897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지니아주 로녹대학에 입학한다. 10대에 미국 대학에서 근대식 고등교육을 받은 것이다. 저자는 김규식은 “한국에서 정치적 격변이나 활동에 개입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건너가 학문적 수련을 거친 첫 세대”라면서, 이것이 이승만이나 서재필 등 이미 국내에서의 경험으로 정치적 신념의 틀이 잡힌 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독립운동가들과 김규식의 차별점이라고 지적한다. 김규식은 영어를 포함해 외국어 9개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천재적인 어학능력 덕분에 독립운동 주체들과의 갈등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교사나 교수로 일할 수 있었다.

1919년부터 1921년까지는 김규식의 69년 생애에서 불과 3년에 불과하지만 독립적인 책 한 권 분량으로 묶였을 만큼 중요한 시기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김규식은 1919년 임시정부 특사 자격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변화된 세계정세에서 서구 열강을 상대로 독립을 호소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애초 공보 업무만 맡기로 했지만 다른 인사들의 합류가 무산되면서 김규식은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내야 했다. “초대받지 않은 식민지 한국의 ‘자칭’ 대표라는 모호한 지위, 평화회의 사무국과 각국 대표단의 냉대와 무시, 일본의 방해 공작, 조력자의 부재, 재정적 어려움, 평화회의에 걸맞은 청원서 작성과 법률적 검토, 언어 장벽 등의 난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의 냉대를 경험한 김규식은 그 반작용으로 1920년대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의 후원에 기대를 건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원이 결과적으로는 한국 독립운동 세력 내부의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극한 대결을 초래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구미위원부 시절 김규식(오른쪽)과 이승만.

구미위원부 시절 김규식(오른쪽)과 이승만.

김규식은 임시정부 부주석까지 지냈지만, 임정과 그의 관계는 애증에 가까웠다. 김규식의 임정 활동은 1919~1921년, 1933~1935년, 1943~1945년 등 총 세 차례다. 두 차례나 임정과 결별했다가 돌아온 것이다. 김규식은 특히 1921~1922년에 접어들어 임정에 대해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는데, 여기에는 이승만에게서 받은 배신감이 컸다.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 이후 구미위원부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이승만의 제의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실제로 했던 일은 공채표(임정이 발행한 채권)를 미국 지역 한인들에게 판매하는 “세일즈맨”에 가까웠다. 파리강화회의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김규식은 미국에서 뇌종양 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회복했으나 이승만은 병문안은커녕 안부도 전하지 않았다.

책 집필을 위해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일본 등의 해외 자료를 샅샅이 뒤져야 했던 저자는 3권 말미에 ‘김규식 자료 추적기’라는 제목의 글을 수록했다. 70여쪽 분량의 이 ‘추적기’는 뛰어난 역사학자의 작업은 사료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1800쪽이 넘는 이 두꺼운 평전의 요약본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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