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안의 역사 컬렉션
박건호 지음
휴머니스트 | 436쪽 | 2만5000원
기록학자 박건호의 방에는 빛바랜 사진, 편지, 한자로 쓰인 공문서 등 온갖 ‘옛것’들이 쌓여 있다. 30여년간 모은 수집품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다. 쌀 포대와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파편까지, ‘이런 것까지 모았다고?’ 싶은 물건도 있다. 책은 그중 엄선한 110점을 통해 개항부터 해방 직후까지 한국의 근대 생활상을 풀어낸다.
무명인의 이름이 적힌 문서들은 역사 강사이기도 한 저자의 맛깔나는 설명으로 역사적 맥락을 부여받는다. 공주부 참사관 이석령에게 공주재판소 검사를 겸하게 한 고종의 칙령에서 저자가 발견하는 건 ‘건양 원년 1월18일’이라는 문구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닷새 지난 1905년 11월22일 23세 청년 원태우는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를 향해 돌을 던졌다. <일로전쟁 사진 화보> 제39권에 실린 관련 삽화. 휴머니스트 제공
조선이 세계 표준 달력을 받아들인 것을 기념해 ‘양력을 다시 세운다’는 의미의 연호를 쓰기 시작한 지 18일째라는 것. 저자는 거시사와 미시사가 교차하는 순간을 기민하게 포착해낸다.
기차 등 신문물에 대한 경외가 깃든 개화기를 지나면, 수탈과 핍박의 그늘이 저자의 수집품에 드리운다. 태형 사진, 황국신민서사 전단, 일제 경찰을 지냈다가 미 군정기에 다시 경찰이 된 사람의 이력서 등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선 ‘보통 사람’들의 저항이 눈에 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닷새가 지난 1905년 11월22일. 안양에 살던 23세 청년 원태우는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 창문을 향해 돌을 힘껏 내던졌다. 창문이 깨지고, 파편이 실제 히로부미의 얼굴에 박혔다고 한다. 책에 실린 화보집 삽화는 이 일을 생생히 보여준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우지 않는 무명의 항거가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