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작가 모임에 초대해준 작가 중 한 명. 장애인들과 함께 만든 화관을 장식으로 씌워주자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의 웃음에는 분명 젊음이 깃들어 있었다. ⓒ레나
늙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한다. 당연하다. 인간에게 죽음은 숙명이니까. 그런데 요즘에는 생명 연장과 함께 젊음에 대한 욕망이 트렌드다. 중년에 접어든 40대는 ‘영포티(Young Forty)’라는 신조어를 붙여 ‘늙지 않음’을 강조하고, 인터넷만 연결하면 동안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성형 광고를 볼 수 있다.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어려 보이는 화장, 패션 콘텐츠가 흥한다. 젊어 보이려는 노력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젊음이 왜 외모에만 적용되는지 의문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연륜이 큰 자산이었다. 농작물을 잘 기르고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생명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정보사회인 요즘에는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기저에는 변화에 뒤처지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변화 속도가 특히 빠른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동안에 대한 집착은 뒤처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은 외면에만 치중해 내면에서 나오는 젊음은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나이가 들수록 뇌도 늙는다. 뇌의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교류가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의 언어를 잘 듣지 않게 된다. 타인의 반응에 상관없이 자기 얘기만 계속할수록 뇌는 굳는다. 아무리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가져도 알맹이가 굳어 자신의 주장만 고집한다면 그 ‘젊음’을 젊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젊음은 주름진 얼굴에도 존재한다.
캐나다 작은 마을에서 지낼 때 일이다. 여성 작가 모임에 초대받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중년 이상 작가들의 모임이었는데, 세 시간 남짓 동안 그들이 보여준 배려와 경청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먼저 내 이야기를 묻고 조용히 들어주었고, 이야기와 연결된 자신들의 경험을 말해주었다. 장황스럽지도, 요란스럽지도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깊은 연륜이 묻어나왔지만, 내가 겪은 경험에 대해 자신들이 몰랐던 부분이 있다며 새로운 세계를 알려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생동하는 젊음이 가득했다.
타인의 세계를 들어주는 마음, 호기심과 정성스럽게 내어주는 환대의 손길, 이런 마음이야말로 젊음이 가진 가장 빛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런 젊음은 외모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우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