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와 대출이자는 공통점이 있다. 잠도 안 자고 휴일도 없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길 방법이 없다. 5년 전 이즈음 몇군데서 돈을 빌렸고, 금융기관은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대출 만기 알림을 주곤 한다. 그중 한 대출의 상환일이 왔고, 갚아야 했다. 결국 며칠 전 생일 선물처럼 신규 대출을 받았다. 대출의 시작은 2020년 구례 물난리였다.
그때처럼 올여름도 전국 이곳저곳에서 폭우와 산사태,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남 일 같지 않았다. 쓰러진 가재도구와 물에 젖은 침구류, 허탈한 표정, 쓰러진 소들, 화면이 전달하지 못하는 특유의 냄새까지 겹치며 심박수가 치달았다. 허겁지겁 집을 빠져나왔던 기억과 폭격을 맞은 듯 엎어지고 뒤집힌 집의 마루에 들어선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후 겪어야 할, 이번 피해자들은 아직 모를 어려움들이 기다란 카드명세서처럼 머리에 찍혔다.
피해 주민들은 정치인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입에 주목했고, “걱정 마라” 한마디를 듣고 싶어 두 손 모으고 머리 조아렸다.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그들을 따라다녀야 하는 그 이하 수십명이 우리집 마루까지 들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표정은 나보다 맘 아파했고, 악수하며 힘준 손에 위안을 받았다. 거기까지였다.
키 높이까지 물이 들어온 목조주택 벽을 모조리 뜯어내고 갈비뼈처럼 기둥만 남은 집 앞에 앉아 쉬는데 공무원이 찾아와 말했다. “이 집은 완파, 반파, 침수 중에서 침수에 해당됩니다. 집이 무너진 건 아니니까요.”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지원금이 두 배로 지급된다고 했다. 그래서 200만원을 받았다. 3000억원이 넘는 특별교부금은 지역의 토목공사 비용일 뿐 피해 가구에는 한 푼도 줄 수 없는 돈이었다. 개별 보상금은 소송을 통해 책임을 가려야 한다.
정부의 뒷모습은 악수할 때와 달랐다. 구례는 댐의 무자비한 방류로 침수된 경우였지만 정부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였고, 댐 관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댐은 100년 빈도의 강수를 견디도록 설계됐는데 500년에 한 번 내릴까 말까 한 비가 내린 ‘천재지변’이었기에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얘기였다. 국가배상법 제5조 1항에는 재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사람은 ‘피해자’, 즉 국민이다.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세상은 냉정했다.
물에 젖은 벽을 뜯기 위해 망치를 빌려 오는 길에 논에서 피를 뽑는 한 농부의 모습을 봤다. 누군가는 쌀 한 톨을 생각하며 땀을 흘리는데 나는 내 집을 부수러 가며 눈물을 흘렸다. 잡초를 걱정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웠다. 그들의 일상이 부러웠다.
돌아보면, 딱 일어설 수 있을 만큼 된통 얻어맞은 느낌이다. 사진과 책과 음반 등 그 이전의 추억물은 사라졌다. 그리고 피해 수습을 위해 달려와 준 지인들, 십시일반이 넘을 정도로 위로금을 보내준 이들이 있었다. 은행 빚과 달리 그들에 대한 고마움은 갚지 못할 만큼 남아 있다. 덕분에 다시 괭이를 들고 논으로 나선다. 여전히 힘들 피해 주민들도 끝내 일어서길 기도한다.
원유헌|구례 사림마을 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