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여수까지 시외버스로 3시간이 걸렸다. 두 도시 간의 거리는 127㎞에 불과한데 4곳이나 경유하니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지금은 잊고 살지만 실상 통영의 뿌리는 여수다. 1602년 전라도 여수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통영)이 경상도 고성현 두룡포로 이전하면서 통영이 탄생했다. 1895년 폐영될 때까지 통영은 경상도도 전라도도 아닌 ‘특별자치구역’으로 존재했다. 여수의 전라 좌수영도, 부산의 경상 좌수영도 통영 소속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이들 해안 도시 간에 교류가 활발했고 그 전통은 199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내내 여수와 통영, 부산 사이에 여객선이 운항됐다. 1971년 4월19일부터는 초쾌속선 엔젤호가 취항하면서 이들 도시 간의 거리는 더 좁혀졌다. 엔젤호는 통영~여수, 통영~부산을 85분 만에 주파했다. 고속 운항 시 수중 날개로 선체가 부상하도록 설계돼 있어 2~3m의 높은 파도에도 운항이 가능했다. 해상교통의 혁명이었다.
정부 추진 남해권발전종합계획
해상교통 활성화 없인 의미 없어
여수~통영~부산 항로 활성화가
쇠락한 도시·섬 살리는 지름길
그 후로도 교통수단은 더욱 발전했는데 어째서 현재 통영~여수 간 대중교통 시간은 더 늘어난 것일까? 바다를 버렸기 때문이다. 해상교통을 버리고 육상교통 수단에만 ‘올인’했기 때문이다. 이 항로는 남해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여객이 줄어들면서 단절됐다. 바다는 그 자체로 고속도로다. 그런데 거저 쓸 수 있는 바다 고속도로를 버리고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어 육상의 도로나 교량 건설만을 고집한 결과 오히려 53년 전보다 두 도시 간 대중교통이 퇴화한 것이다.
이 항로에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때 여수와 부산을 잇는 대형 크루즈가 잠깐 오간 적이 있다. 또 2021년 해양수산부가 여수~부산 항로에 부정기 여객선 부활을 시도한 적도 있지만 무산됐다. 관광과 해상교통 결합 상품으로 뱃길 복원을 시도한 것인데 결국 사업성 부족으로 불발됐다. 하지만 관광 크루즈와 해상교통을 결합해 성과를 내는 사례도 있다. 포항~울릉도 항로의 울릉크루즈다. 대형 크루즈선 투입으로 연간 140일에 달하던 결항일은 절반이 줄었고 휴지기이던 겨울 관광객도 새롭게 창출됐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남해안권발전종합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은 부산, 전남, 경남 등 남해안 3개 시도가 공동 입안하고 정부가 승인한, 남해안의 경제·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이다. 2030년까지 10년간 96개 사업에 20조5495억원(기반시설 제외)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광역 관광벨트 조성, 미래산업 육성, 산업·관광 거점을 연계한 인프라 구축, 동서 상생 협력 사업 등을 추진해 남해안을 새로운 국토 성장축으로 삼겠다는 게 목표다. 그에 따라 3개 시도는 남해안 테마 섬 개발 관광벨트, 동서 상생 협력 벨트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계획에는 동서 해저터널 및 남도 2대교 개통 등 육상 도로 교통 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하지만 해상교통 활성화 계획은 없다. 해상교통 활성화 없이 테마 섬을 개발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남해안권에 이미 수많은 도로와 해상 교량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결국 또 육상 도로와 교량 건설만 하겠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그 육상 도로들만으로 남해안권이 살아날 수 있을까? 이미 건설된 수많은 도로와 교량들을 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지역이 나아졌는가? 빨대효과만 극대화되지 않았는가? 육상교통은 더 이상 새로운 동력이 되지 못한다.
해상교통 활성화야말로 남해안권 도시와 섬들의 미래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남해안권발전종합계획에 여수~통영~부산의 남해안권 해상교통 복원을 포함시킬 것을 촉구한다. 이 뱃길에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을 설계하고 그에 맞는 초쾌속선을 투입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해상교통 복원은 개인 사업자들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해상교통과 멀어진 국민의 감성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꼭 남해안권발전종합계획이 아니어도 좋다. 해수부에서 여객선 공영제로 여수~통영~부산 간 여객선 항로에 금오도, 사량도 같은 섬들을 포함해 복원을 추진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기존 사업자가 없으니 진입 장벽도 없다.
해수부는 북극항로 개척만이 아니라 53년 전보다 퇴보한 남해안권 해상 항로 또한 활성화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쇠락한 남해안 도시와 섬들을 살리는 지름길이다. 바다 고속도로 활용 없이는 섬 활성화도 해양시대도 없다.
강제윤|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