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세계를 휘젓는 건 그의 개성 때문만이 아니다. 동맹을 압박하며 국제질서를 흔드는 그의 요란스러움에는 역사적, 구조적 배경이 있다. 1990년대 말부터 미국 내에서는 세계로부터 철수해야 한다는 외교 대전략 논의가 활발했다. 이른바 역외균형론이다. 언젠가 미국 패권도 쇠퇴한다, 동맹국과 책임을 나눠 지역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개입은 지역 패권국이 부상할 때로 제한해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부상하는 중국 견제다. 역외균형론에 의한 제한적 개입은 오바마 때부터 일관된 미국 외교 흐름이다.
그 흐름이 더욱 커져 맹렬하게 세계를 몰아치고 있는 따가운 여름, 한반도 미래를 좌우할 한·미 정상회담이 25일 열린다. 때로는 과감하게 두려움 없이 한발 내디뎌야 하고, 타협할 일에는 유연해야 하며, 필요할 때는 완강하게 맞서야 한다.
우선 미국의 변화, 이 변화가 만들어가는 국제질서의 재편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임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주한미군 철수론만 나오면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경기를 일으켰지만, 군사강국이라면서 세계 최빈국 북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드론이 정밀 무인 전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원거리 타격 수단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주한미지상군 숫자에 집착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과감하게 주한미군 감축을 수용하고, 한국이 대북 방어를 주도하고 미국은 지원하는, 역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도 돌려받아 ‘정상 국가’로 만들 기회로 삼으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말 그대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미군을 외부 차출하되 한국 안보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절충할 수 있다.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 외교 대전략 전환에 미국이 잘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본성에 충실할 뿐 대전략에 충실한 사람이 아니다. 세력균형을 위해서는 국가 간 힘의 변화를 감지해 사전 예방하고 조정하는, 정교하고 세련된 외교술이 요구된다. 그건 허세·공치사·생색내기를 좋아하는 트럼프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다.
개입 축소에 따른 동맹 부담 공유를 위해서는 동맹과의 긴밀한 협력과 연대가 필수다. 트럼프는 결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동맹 갈취로 동맹 균열을 부추겼고, 그 때문에 대전략은 아직 실행되지도 않았다. 트럼프는 대만이 침공당할 때 방어할 것이냐는 질문에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관세 압박으로 동맹의 팔을 비틀던 8월 초에는 느닷없이 중국에 대해 관세부과 90일 연장과 같은 관용 조치들을 내놨다.
중국 문제에 혼선을 드러내며 자기 입장도 정립하지 못한 미국이 정작 한국에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현대화’를 하자고 주장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말한 대로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맹”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땅이 대중 전진기지가 되면 주한미군은 지역 기동군으로 재편돼 중국 견제, 대만 방어 임무를 맡을 것이고, 중국은 유사시 한국을 폭격할 것이다.
동맹은 위협 공유를 전제로 한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래 공동 위협은 오직 북한이었다. 조약문이 북한 위협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70년 쌓은 양국의 합의문과 행동은 오직 북한 위협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삼자는 건 동맹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건 정부가 미국 요구를 따르겠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문제가 아니다. 조약을 바꿔야 한다. 조약을 고치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동의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한·미가 중국을 공동 위협이라고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히 가져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 관련, 안보 협력과 경제 협력을 해야 할 중요한 이웃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시대가 끝났으니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제정치 현실에서 통할 수 없는 이분법이다. 한국은 안미경중을 해본 적도 없다. 양국 모두와 경제·안보 협력을 했고, 그 결과 경제적 번영도 이루고 안보도 튼튼해졌다. 미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철수하려는 마당에 우리 운명을 미국에 맡기자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도 없다.
이재명이 정상회담에서 견지해야 할 세 가지 태도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과감하게, 유연하게, 완강하게.
이대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