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80년이 되는 해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며 세계 10위권 선진 민주 국가로 우뚝 섰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 달 전 행한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 기조연설에서도 “내란 극복 과정에서 참여와 연대의 가치를 확인하며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갔다”며 한국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위기 시대의 전범(典範)임을 선포했다.
돌이켜보면 광복 이후 80년간 한국 정치사는 시민의 많은 투쟁과 희생을 통해 민주화를 진전시켜온 고난의 여정이었다. 전반부 40여년은 4·19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 1년을 제외하면 민간독재와 군부독재가 지배했다. 1987년 6월항쟁이 민주화의 문을 열면서, 후반부 40여년은 다섯 차례 정권 교체를 통해 민주주의 제도를 점진적으로 정착시켜왔다.
이 여정의 선두에는 언제나 시민이 있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은 독재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시민들의 치열한 저항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가 시민의 뜻과 멀어질 때마다 시민은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 변화를 끌어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넘어선 촛불항쟁과 윤석열 정권의 내란 사태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형형색색의 응원봉은 그 상징이다.
시민이 운동을 통해서 민주화의 길을 열었음에도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정치 엘리트들의 몫이었다. 1987년 시민의 저항으로 민주화의 문이 열렸지만, 제도화 과정은 군부 집권 세력과 야당 지도부의 협상으로 일사천리로 타결됐다. 민주화 과정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과제, 즉 권위주의 체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보다는 대통령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에 집중됐다. 흔히 학계에서는 한국과 같은 ‘타협에 의한 민주화’가 아래로부터의 혁명보다 안정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타협에 의한 민주화의 유산은 컸다. 한국형 민주화의 결과로 탄생한 87년 체제는 시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중앙집권적 수도권 체제 위에 단임제 대통령제가 도입됐고, 선거제도는 겉으로는 혼합형 선거제를 갖췄으나 비례대표 비율이 지나치게 낮아 사실상 다수제로 기능했다. 민주화의 결과로 도입된 승자독식 체제는 지역 정당 구도와 맞물려 민주당 계열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번갈아 권력을 차지하는 정치적 카르텔로 굳어졌다. 대통령직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매우 큰 이 체제에서 거대 양당 간 내부 경쟁은 치열했지만, 새 세력의 진입은 어려웠다. 그 결과 편향된 대표 체계가 만들어졌고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 같은 정치적 소수자의 대표성은 보장되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이끌어온 주체와 그 목소리를 제도 정치에 담아내는 주체 사이의 불일치는 한국 민주화 전 과정을 관통하는 특징이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높은 진입 장벽과 편향된 대표 체계 속에서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시민은 정치의 주역이 되지 못한 채 관객으로 물러나 있다. 버나드 마넹이 말한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가 반복됐다. 그 결과 한국 민주주의는 주로 광장에서 저항의 순간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확인된다(셸던 월린, <Fugitive Democracy>).
국민주권정부는 어떠한가? 최근 국민주권정부의 국정과제가 발표됐다. 국민주권정부는 광복 80년의 역사를 건국-산업화-민주화로 정리하고 다음 과제로서 국민 행복을 제시했다. 국민주권정부의 중심 비전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나라’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 행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제시한 국정 비전이었다는 사실이다. 국민주권정부는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향한 동력으로 ‘AI 3대 강국, 잠재 성장률 3%, 국력 세계 5강을 달성하는 진짜 성장’을 내세웠다.
국민주권정부의 주권자는 묻고 있다. 국민주권정부가 내세운 ‘행복한 나라’는 과연 박근혜 정부가 말한 국민 행복과 무엇이 다르며, ‘진짜 성장’은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처럼 단순한 양적 성장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더 나아가 그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화두인 다중격차를 넘어, 무너진 기회의 사다리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가.
이 대통령은 세계정치학회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승리하는 방법은 오직 더 많은 민주주의뿐”이라고 역설했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주권자가 청중으로 머무르지 않고 민주주의 주역으로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투표장에서 멈춘 민주주의를 넘어서 편향된 대표 체계의 민주화를 시작할 때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