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비워서 받아들이고 물은 채워서 흘러가니, 독서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익히 읽어온 것으로만 계속 채울 뿐 그와 다르거나 새로운 지식은 접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문제지만, 읽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다져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전에 새로운 지식만 좇아가는 행태도 문제다. 옥석을 가리지 않고 비워둔 채 모든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는 산, 작은 웅덩이 하나까지 다 채우기 전에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물에 견주어서 독서의 바람직한 자세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공자가 물을 좋아한 이유를 맹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근원이 넉넉한 물은 밤낮 쉬지 않고 흘러서 웅덩이를 만나면 채운 뒤에야 앞으로 나아가서 끝내 바다에 이른다. 이처럼 근원이 넉넉한 것을 높이 치신 것이다.” 목적지로 가는 길이 바쁘더라도 그 길에 낮게 파인 웅덩이가 있으면 아무리 작더라도 빠짐없이 다 채우고 난 뒤에야 앞으로 나아가는 물의 속성은, 공부의 단계를 함부로 뛰어넘지 말라는 가르침의 모범이 되었다.
<주역>의 함괘(咸卦)는 산 위에 못(澤)이 있는 모양으로, 비어 있어서 서로 감응하고 소통하며 평화와 상생을 이루는 괘다. 산이 비워서 못을 받아들이듯 마음이 비어 있어야 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먼저 들어와 마음을 가득 채운 무언가가 주인이 되어버리면 감응의 길이 막혀서 더 이상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처럼 비움은 채움을 넘어 수용과 소통의 바탕이다.
오늘 우리가 독서 대신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온라인 영상매체들은 대개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자 패턴을 분석해 관련성과 만족도가 높은 것을 먼저 보여준다. 취미는 물론 정견과 가치관까지 특정한 지향으로 가득 차서 다른 시각의 지식은 들어올 자리가 없게 될 공산이 크다. 인터넷 검색으로 인해 ‘아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더니, 생성형 인공지능은 간편한 명령만으로 나의 지식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준다. 이제 지식을 차근차근 채워 내 것으로 숙성시킬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과연 채우지 않고도 자라나고 비우지 않고도 새로워질 수 있을까? 신기루 같은 세상을 살며, 비움과 채움의 독서를 다시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