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 과잉과 경쟁력 약화로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은 정부 의지만으로 성공할 수 없고, 기업과 노사의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10개 석유화학 기업이 최대 370만t의 설비(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을 목표로 각 구체적 사업재편 계획을 연말까지 제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전체 NCC 생산능력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는 국내 3개 석유화학단지에서 동시에 과잉 설비를 감축하되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고, 지역경제·고용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한 구조개편 방향을 내놨다. 또 ‘선(先) 자구노력 후(後) 정부 지원’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적극적으로 생산 감축에 나서는 기업은 맞춤형 지원을 하고, 무임승차하려는 기업은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시간표와 목표량이 정해지면서 구조조정 협상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업체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조율이 쉽지 않고 기업 손실을 줄이려는 눈치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애초의 구조조정 의지가 흐지부지되고 시간도 지체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정부가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석유화학의 자율적 사업 재편을 촉구했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없었다.
석유화학 업계의 위기는 돌출된 악재도 아니다. 2020년대 들어 중국에 이어 중동 산유국까지 대거 설비 증설에 가세하면서 수익성은 급전직하했다. 3~4년 전부터 켜진 경고등에도 기업들은 그간의 관성과 호황에 취해 대응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다. 그사이 수요 부진까지 겹치며 구조적·장기적 불황에 접어든 것이다. 국내에서 가동 중단된 공장설비가 늘어나고, 대기업 합작사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던 여천NCC가 부도 직전까지 몰린 게 그 방증이다.
구조조정은 이제 생존의 문제가 됐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사업을 정리·조정하고, 필요하다면 기업 간 인수·합병도 이뤄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용이 불안하고 지역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정부가 여론 악화 등을 우려해 금융 지원이나 전기요금 인하에 섣불리 나섰다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나 기업 모두 고통을 외면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우물쭈물하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남 여수 여천NCC 제2사업장 전경 사진. 여천NC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