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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에 대한 면역

입력 2025.08.20 20:39

수정 2025.08.2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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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기적’에 대한 면역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어느 날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게 딱 적당한 양의 바닷물이 한곳에 모여있게 된 걸까? 그리고 그는 이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기적이 벌어질 수 있도록 해준 어떤 거대한 힘이 바다 밖에 숨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천문학자들을 오랫동안 괴롭히는 기적이 있다. 우리 우주가 너무 완벽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점이다. 이 우주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지적 존재로 키워내는 것에 성공했다. 우리가 바로 그 위대한 승리의 증거다.

만약 태양에서 지구가 조금만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태양의 질량이 조금만 더 무거웠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존재할 수 없었다.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도 많은 기적이 숨어있다. 우주를 움직이는 다양한 물리 상수들이다. 중력의 세기를 결정하는 중력 상수,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입자들의 질량 등등이 맞물려서 작동한다. 그런데 이 값들 중 단 하나라도 조금만 달랐다면 우주는 결코 우리를 만들 수 없었다.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아 아직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기적 말고 무슨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마치 누군가 개입한 게 아닐까 하는 어색한 의심이 들 정도로, 우주가 아름답고 완벽하게 조율된 것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이 철학적 난제를 우주의 미세 조정 문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미세 조정 문제는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물고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물고기는 자신이 사는 바다가 완벽한 기적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거대한 웅덩이에 바닷물을 채워 넣기라도 한 것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됐다. 물고기를 위해서 바다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우연히 바다가 먼저 만들어졌고, 물이 많은 곳에서 물고기가 태어났을 뿐이다. 지구에는 물이 전혀 없는 메마른 곳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곳에 물고기는 존재할 수 없다.

애초에 우주의 상수가 지금과 달랐다면, 그런 우주에서는 복잡한 생명체가 무사히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왜 우리 우주는 이렇게 못생긴 세계일까’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적 생명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애초에 그런 세계에는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 생명체는 자신들이 보기에 완벽하게 조율된 것처럼 보이는 우주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그 세상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건 자신을 위해 특별한 기적이 벌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우주를 바라보며 스스로가 기적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진다면, 그것은 바닷속을 헤엄치며 그 바다가 자신을 위해 탄생한 기적의 세상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물고기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한 발짝 물러나서, 우리가 기대했던 그 기적이 실은 별로 특별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철학적 개념을 ‘인류 원리’라고 이야기한다. 매력적인 철학적 논증이지만, 사뭇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모든 수준의 인간 중심적 사고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말 ‘비인간적’인 관점이다.

사실 인간은 오랫동안 기적을 좇았다. 기적은 현재까지 인간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붙인 가장 시적인 변명이다. 무언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신의 무지를 원망하기보다는 더 거대한 힘에 의한 기적으로 답을 대신하려 했다. 그러한 우리의 게으름 속에서 기적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이해는 귀찮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반면 공백을 기적으로 메우는 것은 훨씬 간편하다.

요즘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을 ‘기적’ 덕분으로 돌리려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의미 없이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에게만 보이는 기적이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일종의 억지 기적이다. 그리고 그 자신만의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 더 거대한 존재가 세상의 어둠 속에 암약하고 있으며 온 세상을 제멋대로 미세 조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실권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으며, 그들이 온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만기친람하고 있을 거라는 그들의 주장은 정확히 종교의 그것과 닮았다. 어쩌면 종교에 과도하게 심취한 이들이 유독 이러한 ‘기적팔이’에 취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억지 기적에 기반한 온갖 이야기가 범람하는 이 혼돈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적에 대한 면역력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지웅배 천문학자

지웅배 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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