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짓는 마지막 옷? 내 옷 지을 것 같아. 50년 양장점을 했어도 내 맘에 드는 옷감 떠다가 내 옷을 지어 입은 적 없어. 다른 사람들 옷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만들어 입었어.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내가 지었지. 하얀색 블라우스하고 바지. 난 하얀색 옷이 좋아. 나이 들어서 하얀색 옷 입으면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데,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새 옷 지어 입고 친구들 만나러 가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일요일 밤, 박경자씨(1950년생)는 혼자 재봉틀 앞에 앉아 있다. 그녀의 손에는 아흔 살 손님이 수선을 맡긴 셔츠와 바늘이 들려 있다. 셔츠를 붙들고 앉아 하나부터 열까지 손보고 있다. 뜯고, 접고, 잇고, 박고.
아들 돌 때 장만한 재봉틀의 나이는 마흔넷. 그동안 그녀는 재봉틀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고장 나면 그때그때 고쳐서 썼다. 모터는 두 번 갈았다. “고마워, 우리 식구 살게 해줘서.” 일심동체인 재봉틀에게 그녀는 소리 내 고마움을 표현하곤 한다.
“끝까지 써야지. 내가 옷 만들고 수선할 수 있을 때까지. 내 가보. 이걸로 먹고살고, 아들딸 키우고 가르치고 결혼도 시키고. 지금껏 이걸로 먹고살고 있으니까.”
재봉틀 앞 벽에는 색색의 실패들이 은하수처럼 흐르고 있다. “실패가 몇개나 될까? 1000개는 안 되겠지. 500개는 될 것 같아.”
열여덟 살에 그녀는 군산 집을 떠나 서울에 올라왔다. 옷 만드는 것도 배우고, 돈도 벌러. 충무로에 있는 양장점에 취직했다. 잔심부름을 하면서, 단추 다는 걸 배웠다. 1년을 꼬박 단추를 달았다. “단추 다는 것도 기술이 있어. 단추는 틈을 주고 달아야 해. 바짝 붙게 달면 겉이 편하지 않아. 요즘에는 기계로 달아. 단추는 손으로 다는 게 튼튼해. 내가 짓는 옷은 다 손으로 달지.”
단 꿰매는 것도 1년 차에 배웠다. 2년 차가 돼서야 다리미질을 했다. 1년 내내 했다. 3년 차가 돼서야 칼라 뒤집는 걸 하고, 재봉사 선생님 옆에서 보조 역할을 했다. 그것도 1년 내내 했다. 4년 차가 돼서야 틈틈이 재봉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단사 선생님이 재단하는 건 어깨너머로 배웠다. “누가 붙들어 앉혀 놓고 가르쳐주지 않아. 눈치껏 배웠지. 눈치껏 내가 알아서 배워야 해.”
양장점에 다니며 그녀는 남동생 셋을 뒷바라지했다. 15만원 남짓하던 방 한 칸짜리 전세방을 얻고 세 살 터울인 남동생을 데리고 올라왔다. 고등학생이던 남동생 밥 해 먹이고, 도시락 싸주며 양장점에 다녔다. 학비를 댔다. 서울로 데려오지 못한 두 동생의 학비와 하숙비는 고향 집에 부쳐주었다. 그녀가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처음 만든 옷은 그녀 자신의 바지. “내가 처음 만든 내 옷인데, 좋지. 안 예뻐도, 좋지.”
스물일곱 살에 서울 성북동 산동네에 간판도 없는 작은 양장점을 냈다. 결혼한 여자들이 그녀의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다. 한 달에 열 벌 정도 지었다. 밤을 지새우며 옷을 짓기도 했다. 스물아홉 살에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양장점을 했다. 아이 낳고 잠깐 쉬고. 또 아이 낳고 잠깐 쉬고, 계속. 기성복이 등장하고 옷을 사 입는 시대가 오면서 수선이 주가 됐다.
그녀는 하루에 재봉틀 앞에 8시간쯤 앉아 있다. 수선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옷을 짓는다. “팔리는 옷도 있고, 안 팔리는 옷도 있어. 오래 안 팔리는 옷은 그냥 내가 입어.” 그녀는 웃는다. “안 팔려도 괜찮아. 안 팔리는데 어떡해.”
헌옷수거함 차지가 될 뻔했던 옷들이 그녀의 손을 거쳐 새 옷으로 탄생하는, 양장점 겸 수선가게는 3평 남짓. “아들 어릴 때 돼지라고 불렀어.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서 돼지네 옷집이라고 지었어. 여든 살까지는 하고 싶어. 더 할 수 있으면 더 하고.” 말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뜯고, 접고, 잇고, 박고, 실을 꿰는 그녀의 손 움직임은 차분하고 부드러워 차라리 정물화의 오브제 같다.
“3시간째 손보고 있어. 30분은 더 붙들어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최저임금도 안 나와. 동네에서 수선비 비싸게 받으면 사람들이 수선 못 맡기지.”
그녀가 가위를 집어 든다. 닳아 벌레가 뜯어 먹은 것 같은 소맷단을 오리고 내려놓는다. 스물일곱 살에 양장점 내면서 산 잠자리표 가위는 그녀의 세 번째 손이다. “생전 고장 난 적이 없어. 고장이 나야 바꾸지.”
김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