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암자 같은 한옥에 수도승처럼 기대 사노라니 차려 먹는 요깃거리도 간소하기 짝이 없다. 국수나 만두, 떡국을 쑤어 먹기도 하고, 면류 요리를 좋아도 해. 가족들은 그래도 밥을 먹어야지 ‘밥심’으로 사는 거지 하며 쓴소리를 해. 누가 기록한 조선시대 유물 책을 보니 보통 청동 밥그릇이 1700㎖ 크기. 요새 밥공기는 350㎖ 정도란다. 무려 한 끼니에 공깃밥 다섯 그릇을 먹었대. 물론 임금이나 양반 말고 누가 날마다 쌀밥을 지어 먹을 수 있었겠냐만.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맏딸 호원숙 선생의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엔 엄마의 부엌살림과 요리 얘기가 가득해서 반갑더군. <조선요리제법>이란 참고서가 놓인 충신동 옛집의 책장. <죄와 벌>이나 <전쟁과 평화>와 나란히 꽂혀 있었다지. “쌀을 꺼내 물에 씻으면 그 감촉과 빛깔이 질리지 않아. 매일 반복되는 일이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것이 무슨 힘인지는 나도 몰라. 다들 밥심으로 산다고들 하지만 나는 쌀 씻는 힘으로 사는 것도 같아.” 이렇게 말하면서 “어머니가 떠오르는 그리운 장면은 거의 다 부엌 언저리에서, 밥상 주변에서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김이 모락모락, 겨울 길을 가다 밥 짓는 연기를 보곤 서둘러 걷고는 했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뭇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 들에서 보라. 고향길 눈 속에서 꽃등불이 타겠네. …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이수인 작곡의 가곡 ‘고향의 노래’, 꽃등불이 타는 소리, 꽃등불이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는 모습. 하얀 쌀밥과 하얀 함박눈, 온통 새하얀 세상. 타는 듯한 8월의 폭염 속에서 달게 밥 먹고 밥심으로 힘내어 우리 겨울까지 걸어가보자. 동무야! 고향길 눈보라를 헤쳐 걸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