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군 아기자기한 바닷가에 물건리가 있다. 잘 조성된 방풍림이 천연기념물일 만큼 명승 해안 마을이다. 상록수 공부하러 갔다가 한번 들으매 잊을 수 없는 이름의 물건중학교가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빗방울 흔적, 뛰놀던 운동화 자국이 뚜렷하게 어울린 운동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물건리의 물건은 우리가 짐작하는 그 물건은 아니다. 지세가 ‘물’(勿)자 혹은 ‘수건 건’(巾)자 모양을 닮아서 물건(勿巾)이다. 학교마다 명물은 있고, 여기 졸업생들 사회로 나가 물건리 출신답게 물건이 되고 명사가 되기도 하였을까.
살아가는 동안 이래저래 말의 영향을 입는다. 어느 시기에는 어떤 특정한 말에 꽂히기도 한다. 주방의 칼도 명장이 요리할 땐 한입 크기로 재단하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누군가의 손에서는 살벌한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는 말도 명언이다. 한번 뱉은 말,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점에서 말과 물은 같다.
이름 명(名)은 생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몹시 중요하다. 동네 바둑에 빠졌을 땐 명인, <정통종합영어>를 배울 땐 명사와 동명사에 눈길을 주기도 했다. 어느 땐 날파리처럼 눈앞을 어지럽히는 것들도 있다. 급기야 최근 사람들의 심사를 들쑤시는 말은 이것이다. 발음하자면 혀를 괴롭히는 이른바 명품이라는 것들. 명품, 고까짓 게 뭐라고?
명품의 한자는 ‘名品’이다. 희한하게 입(口)이 네 개나 도사리고 앉아 있는 한자다. 손에 닿는 국어사전에서 명품을 찾아보기로 했다. 퍽 오래된 신기철·신용철의 <표준국어사전>에는 ‘명태’와 ‘명필’ 사이에 ‘명품’은 아예 없다. 몇몇 사전에 수록된 뜻은 대개 이렇다. “뛰어나거나 이름이 난 물건 또는 작품.” 그러다가 최근에는 이렇게 확장되었다.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하고 가격이 아주 비싼 상표의 제품.” 사전도 은근슬쩍 시대의 욕망을 정확히 반영한다. 물건도 이제 쓸모보다는 상표!
귀족이란 태어나자마자 은퇴한 사람이라고 한다. 평생 손잡이 돌려 문 한번 직접 열지 못한 여왕의 대리 인생도 이와 같을까. 세상 구경 못 하고 하늘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불우한 빗방울처럼. 물건의 세계에서 명품도 그런 축에 속하는 것일 텐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