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작업을 하는 모습. 언스플래쉬 Unsplash.
정부가 내년 1월 시행되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의 ‘과태료 부과’ 규제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을 놓고 조만간 의견수렴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AI 대전환’을 위해 규제보다 진흥에 무게를 두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시민사회에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미루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정부는 AI 기본법 가운데 과태료 부과 적용은 유예기간을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의견수렴의 방법과 시점을 고민 중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AI 기본법의 과태료 부과 조항에 계도기간을 부여하는 것을 내부 검토하고 있고 최종 결정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을 거친 뒤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계도기간 설정은 법령에 담을 필요가 없어 행정기관의 공표만으로도 가능하지만, AI 기본법의 하위법령을 공개해 의견을 수렴할 때 (과태료 유예 관련 의견수렴도) 같이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AI 기본법의 과태료 유예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이미 여러 경로로 시사해왔다. 앞서 지난달 배경훈 과기부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과태료 부과를 일부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지난 22일 발표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서도 “과태료 계도기간 운영 검토”가 언급됐다. 정부는 유럽연합(EU)의 AI법이 내년 8월에 전면 시행되고, 기업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며, 국내 AI 산업 여건도 감안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AI 기본법은 “AI의 건전한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을 목표로 AI 윤리에 관한 규제를 담고 있다. 인간의 생명·안전·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AI를 ‘고영향 AI’로 규정하고, 관련 사업자에게 안전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AI 업계에서는 특히 고영향 AI의 범위와 과태료 부과 조항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AI 기본법에 따르면, 고영향 AI와 글·영상 등을 생성하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제품·서비스는 이용자에게 AI 기반임을 사전 고지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AI 위험관리 방안과 활용된 데이터 설명 방안 등을 마련·시행하지 않아 시정명령을 받고 이를 불이행하면 동일한 과태료가 부과된다. 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고영향 AI의 범위가 모호해서 AI 스타트업 전반이 규제 영향권에 들 것 같다”면서 “고영향 AI 서비스라는 고지를 해야 할 경우 이용자가 부담을 느끼고 서비스를 피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에선 AI 안전 규범 수립을 뒤로 미루면 오히려 업계에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과태료는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위한 것인데 이마저도 유예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무 통제 없이 ‘위험한 AI를 만들어도 된다’는 메시지로 오해될 수 있다”면서 “과태료 유예는 규범 형성 자체를 미루려는 것으로 보여 업계에 오히려 불확실성만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기업들도 규제를 무조건 유예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규제가 뭔지를 제안을 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