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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

입력 2025.08.25 21:37

수정 2025.08.2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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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출국하는 길. 인천국제공항 한 항공사 카운터에서 수화물을 모두 부치며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휠체어 서비스를 통해 공항 직원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 게이트 앞까지 긴 동선을 이동하곤 한다.

그날 나의 휠체어 서비스에 배정된 직원은 아빠뻘로 나이가 지긋하신 한 중년 남성이었다. 언뜻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니로 분위기를 가진 그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휠체어를 밀기 전 잠깐 멈춰 서 기내 수화물 개수, 휠체어 배터리의 종류와 전력 용량 등을 먼저 확인했고, 나는 그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다. 그는 연이은 배터리 사고로 인해 항공기 내 배터리 소지가 예민한 상황에서 총 용량을 계산했을 때, 기내 배터리 소지가 가능하다고 결론 내리고는, 기내 휠체어 배터리 탑재 방식을 잘 몰라 망설이던 항공사 직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설명했다.

이동하기 전 머릿속 점검표부터 검토한 그는 비로소 이동할 준비가 되었냐는 듯 신호를 보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장 내가 탄 휠체어를 밀고 보안 검색대로 향했다. 검색대를 지키는 직원을 만나 가방 안에 어떤 종류의 배터리가 몇 와트, 몇 암페어 용량으로 담겨 있다고 말하며 기내 소지 가능 품목임을 알렸다. 그러나 공항 보안업체 소속 계약직이었을 ‘휠체어 도우미’인 그의 말을 바로 신뢰하기 어려운 공항 직원은 한참 더 망설였고, 그는 그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배터리 종류를 다시 보고하고 탑승 용량을 계산해 판단을 도왔다. 그의 능숙한 진행 덕분에 배터리를 둘러싼 필요 이상의 지연과 실랑이는 나타나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의 전문성은 지식을 뽐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문이 잠긴 장애인 화장실의 가까운 대안을 찾는다거나, 항공사별로 다른 탑승 진행 시간을 사전에 안내한다거나, 다른 여행객과 부딪치지 않고 최적 경로로 이동하는 방법을 이어서 제시했다. 그는 공항 전문가나 다름없었다.

그와 대화하며 그가 실은 공항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휠체어 서비스 직원이 아니라 퇴직자이며, 은퇴 후 돈도 벌고 사회에 기여도 하고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일과 일하는 자기를 둘 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막내야 네가 다녀와라.” 혹은 “계약직 업무라 뭐…” 하며 떠넘겨졌던 이 ‘사소한’ 휠체어 서비스가 이토록 전문적인 영역이라 느꼈던 적이 있을까. 장애인 고객의 휠체어를 미는 업무를 전문적으로 진심을 담아 실천하는 그를 보며 일의 의미를 다시 곱씹었다.

당장의 일을 미래의 부에 유보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지금을 중요시하는 사람. 장애인 탑승객의 ‘휠체어’를 더 잘 밀기 위해, 휠체어 배터리 규정과 계산식을 외우고, 보안 검색의 규칙을 익히고, 공항의 지리를 익히고, 항공사별 다른 수속 시간을 암기하는 그의 진지한 업무 태도 앞에서 ‘무슨 일을 하건 어차피 인생은 한 방’이라며 우습게 지금의 일을 인식하던 내 마음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날 그가 이끈 건 내 휠체어 이상으로, 주어진 일과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변재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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