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16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우원식(5선)이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선거에서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을 등에 업은 추미애(6선)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러자 강성 당원들은 탈당을 예고하면서 “우원식 뽑은 89명 색출하라”고 외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수석최고위원 정청래는 소셜미디어에 “당원이 주인인 정당,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상처받은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성난 당원들의 반발이 가라앉지 않자 이재명까지 진화에 나섰다. 5월19일 그는 “당원도 두 배로 늘리고, 당원 권한도 두 배로 늘리자”고 했다. 그래도 탈당 행렬이 계속되자, 5월23일에는 “현재 2만명이 넘게 탈당했다.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이 컸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당원 중심 대중정당’으로 확실히 변모를 시키자”고 말했다.
한국 ‘팬덤정치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한 장면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게 그렇게 당 지도부가 나서서 사과하고 달래야 할 일이었나? 혹 우원식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가? 추미애에 비해 덜 강성으로 보인다는 것 외엔 전혀 없었다. 당시 한 친명 의원은 그렇게 반발한 권리당원들의 실체를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적대감’으로 설명했다(동아일보 2025년 8월23일자).
그렇다. 여야를 막론하고 사실상 정당을 지배하는 강성 당원은 상대편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로 움직인다. 정의감 때문에 그렇건 다른 무엇 때문에 그렇건 이제 정치는 증오로 먹고사는 ‘증오 비즈니스’가 되고 말았다. 8월22일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결선투표에 오른 후보 김문수와 장동혁을 보라. 그 둘은 시종일관 누가 더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에 대해 강한 증오심을 표출하는가를 겨루는 굿판의 주인공이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윤 어게인’ 후보들의 결선 진출에 대해 개탄하면서 국민의힘의 미래에 대해 어두운 잿빛 전망을 내놓았다. 사설 제목만 감상해보자. “혁신 없는 ‘반탄파’ 결선으로 좁혀진 국힘”(국민), “누가 돼도 ‘반탄’ 대표…자꾸 퇴행의 늪으로 빠져드는 국힘”(동아), “결국 ‘반탄’ 당대표 뽑게 된 국힘, 수권정당 포기하나”(세계), “민심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국민의힘 전대”(조선), “‘윤 어게인’ 후보끼리 맞붙게 된 국민의힘 결선”(중앙), “‘김문수 대 장동혁’ 당대표 결선, 민심과 따로 가는 국민의힘”(한겨레), “金·張 결선…막가는 전한길에 달린 국민의힘 당대표(한국)
‘증오 비즈니스’가 된 정치
이상하다 못해 엽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전 국민의힘 의원 김웅이 잘 표현했듯이, 전 대통령 윤석열은 “일생 동안 보수만 학살하다 간” 사람이 아닌가. 적폐청산 수사와 비상계엄 선포로 보수를 학살한 걸로도 모자라 이젠 ‘윤 어게인’을 부추기는 일련의 작태로 보수에 대한 ‘마무리 학살’에 임하고 있지 않은가. 그를 향해 돌을 던지고 또 던져도 모자랄 판에 김문수·장동혁은 돌의 방향이 이 정권과 민주당을 향해야 한다고 선동함으로써 국민의힘의 갱생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렸다. 이들이 던진 돌 구경 좀 해보자.
김문수: “전한길은 극우 아냐. 정청래가 극좌 테러리스트”(8월3일), “자숙 안 하는 민주당이 사이코패스”(8월6일), “(김건희 구속 결정은) 헌정사에 유례없는 폭거”(8월13일), “광복 정신으로 이(李) 정권에 저항…단일대오 이탈하면 동지가 아니다”(8월15일), “당 지지율 폭락, 이재명 정권과 못 싸우고 내부 총질했기 때문”(8월18일), “범죄자 이재명 독재 정권을 막는 의병이 되어달라”(8월22일)
장동혁: “계엄 유발한 정청래, 내란교사범·내란주범”(8월4일), “안철수, 내부총질 멈춰라…당원들에 석고대죄하는 게 도리”(8월8일), “조경태는 고름…도려내야 새살 차올라”(8월11일), “정치특검 광기 도 넘어…무도한 수사 강력 규탄”(8월16일), “이재명 정권, 삼류 조폭 정치…끌어내리겠다”(8월17일), “이재명 정권 자행 ‘정치보복’ 끝판 보고 있다”(8월18일),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고 정권을 다시 탈환하겠다”(8월23일)
이 얼마나 화끈하고 시원시원한가. 반면 반성과 성찰은 그 얼마나 치욕적이고 구질구질한가.
8월13일 난장판이 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세 번째 합동연설회에서 장동혁은 바로 이런 정서를 대변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으로 온몸을 던지는 웅변을 내뿜었다. “히틀러를 보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일부 지지자들은 감동하면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인질로 잡힌 피해자들이 구조 후에도 가해자인 인질범을 지지하고 옹호한다는 이른바 ‘스톡홀름 신드롬’보다 더 이상한 현상이 아닌가. 그 인질범을 계속 받들어 모시자는 사람들, 인질범과의 절연을 주장한다고 ‘배신자’라 욕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이런 현상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정치인들은 빼고 말이다. ‘윤 어게인’은 좌절과 절망의 산물이다. 그 주제가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이다. 남은 건 오직 증오다. 보수 언론의 국민의힘 전당대회 관련 사설이나 기사의 댓글에선 이런 심리 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 개만 감상해보자.
(1) 사설의 논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재명과 민주당이 하는 꼬라지를 보라. 어떻게 반탄에 표를 줄 수가 있는가? 싸움도 못하고 힘도 못 쓰는 야당이라면 차라리 이재명과 민주당의 꼬라지에 결사항전을 하는 야당이 되라고 표를 던졌다.
(2) 이재명, 정청래가 노란봉투법, 방송악법 등을 양산하고 중공 문혁과 같이 흑백세상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게 민심의 방향이란 말인가. 숨 쉴 힘도 없이 쥐어터지고 있는 소수 야당이 무슨 기력이 있어서 민심과 반대로 달리고 있다고 참견질이냐?
증오 제어 못하는 세상으로 흘러
(3) 윤 대통령과 선을 긋고 쇄신하고 신뢰를 얻는다고? 사설 쓴 사람은 얼마나 멍청하길래 이딴 소리 하냐? 좌파들 프레임 전쟁엔 정면돌파가 최선이다. 빌고빌고 빌어봐야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꼴이고, 공격 빌미만 준다. 민주당 인간들이 언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 봤냐? 후안무치한 전과 4범 정권이 얼마나 악랄한지 아직 덜 겪어 보았나.
좌절과 절망은 ‘윤 어게인’을 비판하는 이들에게도 있다. 그들의 대안은 국민의힘의 해산이다. 댓글 세 개만 감상해보자.
(1) 평생 보수였지만 윤어게인당 보고 이제 떠납니다. 정청래 대표, 말만 앞세우지 말고 국힘은 꼭 정당 해산시켜야 합니다.
(2) 김문수와 장동혁이 역설적이게도 애국자가 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루빨리 사라져야 마땅할 국힘당의 해산을 촉진하는 것 같아서요. 김문수, 장동혁 파이팅!
(3) 조선 후기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역사 강사 전한길이 주도하는 노론벽파 같은 정당은 21세기 대한민국에 필요 없다. 사이비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윤 어게인’ 옹호자와 비판자 중 더 전투적인 쪽은 단연 옹호자다. 미국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인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어떤 숭고한 대의에 헌신할 뿐만 아니라 열광적인 불평불만을 키워나간다. 대중운동은 그들에게 이 둘을 다 충족하는 무한한 기회다.”
‘윤 어게인’ 운동에 무슨 숭고한 대의가 있느냐고 비웃을 일이 아니다. ‘윤 어게인’ 대중이 사랑하는 극우 유튜브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는 전혀 다른 별천지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좌파 유튜브 세계도 마찬가지다. 양쪽은 서로 접촉하지 않으며 대화하지 않으며 논쟁하지 않는다. 누가 더 증오를 잘 팔아 더 많은 머릿수로 더 많은 돈을 버느냐는 경쟁만 할 뿐이다. 정치인은 점점 더 이들의 하청업자로 전락해가고 있다.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에겐 디지털혁명의 축복이겠지만, 그런 이익과 무관한 대부분 사람들에겐 디지털혁명의 저주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은 증오나 경멸을 지배할 힘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점점 더 그런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늘 당신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 누군가가 그런 증오의 상인은 아닌지 살펴보라. 물론 소용없는 일이긴 하다. 우리는 모두 “나의 증오는 아름답고 정의롭지만 너의 증오는 추하고 악하다”고 믿는 ‘내로남불 동물’이니까 말이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