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을 올해보다 8.1% 늘린 728조원으로 확정했다. 총수입은 3.5% 증가한 674조2000억원이다. 나라 곳간 사정이 좋지 않지만 수입보다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고 민생을 회복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예산안은 정기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구조적·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45조원에 이르는 두 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집행에도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가 0.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새 정부 출범 후 경제 회복 기대감이 일고 있지만,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이 현실화하면서 전반적인 여건은 더 나빠졌다. 부동산 가격 폭등 우려로 기준금리를 당장 추가로 낮추기는 어렵다. 이 대통령 말마따나 국가 재정을 마중물 삼아 혁신 성장과 민생 회복의 두 토끼를 잡아야 한다.
내년 예산안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의 경제·산업 정책과 연계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 분야 예산을 3배 이상 늘리고 AI 대학원을 24개로 늘려 고급인재 1만1000명을 양성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보다 19.3% 늘인 35조3000천억원이다.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RE100산단 등 에너지 전환 및 탄소중립 관련 예산도 확대했다. 수도권 집중 해소와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지방의 거점국립대학엔 9000억원을 새로 투입한다.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예산이다.
문제는 이들 분야에서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나라 빚이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적자 국채 발행으로 올해 49.1%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내년엔 51.6%으로 늘어나고 2029년엔 58%에 이를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예상했다. 증가 속도가 빠르지만 평균 70% 수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하면 다소 여유가 있다.
건전 재정은 중요하다. 재정 상태가 좋아야 경제도 안정되고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건전 재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긴축과 부자감세로 일관한 윤석열 정부 3년간 한국 경제는 멈췄고 민생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새 정부의 확장 예산이 청년과 기업인에게 희망을 주고,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적극 보듬으며, 혁신 성장으로 경제 선순환 구조를 이끄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6년도 예산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