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 적용돼온 미국산 제조 장비 반입에 대한 포괄적 허가 면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공급할 때마다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중국 공장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고 향후 기술 고도화나 공정 전환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미국의 중국 견제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유탄을 맞게 되는 셈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프로그램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오는 2일 연방 관보에 게재된다고 밝혔다. VEU는 2022년부터 본격화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도 별도 허가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는 지위를 말한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삼성전자 중국 시안 낸드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 D램, 다롄 낸드 공장은 내년 1월부터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들여올 때 미국 정부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VEU를 통해 동맹국 기업들이 받을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미흡하나마 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는 이마저도 “바이든 시대의 구멍”이라며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무기 삼아 미국에 공장을 짓게 하면서도 기존에 약속한 보조금 지급은 아직도 실행하지 않고 있다. 보조금 지급을 대가로 삼성전자 등 기업의 지분을 미국 정부가 확보하는 방안을 거론할 정도로 기업 활동을 무시하고 있다. 반도체에 최대 100%의 품목관세 부과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관세의 무기화’도 여전히 한국 기업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경제안보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차원에서 반도체 통제력을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의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자국 이익을 위해 동맹국 기업의 이익을 이처럼 함부로 훼손하는 조치를 언제까지 용납해야 할지 의문이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핵심 산업이다.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 저하가 기업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가 긴밀히 나서서 국내 기업들에 대한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극 대처해야 한다. 기업 역시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축해 트럼프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