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있는 다원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확고한 합의다. ‘일당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중국과 다르다. 인민 다수의 지지를 얻은 한 지도자의 의지에 체제 운영을 맡기는 러시아식 ‘주권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여야의 경쟁과 정권의 교체가 허용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우리 관점에서 민주주의가 아니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은 ‘야당 무시’에서 비롯되었다. 박근혜는 야당과 국회를 꾸짖어달라며 국민 서명운동에 나섰다. 윤석열은 야당과의 대화를 감정적으로 거부했고 국회의 권위를 조롱하며 불법계엄을 도모했다. 그들은 여와 야 사이에서 일을 풀어가는 법을 몰라 몰락했다.
여야의 적대정치, 헌법 정신 배치
여야가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의 요청이다. 헌법 제8조는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고 규정한다. 국회의원의 의무와 관련해 제46조는 “국가이익을 우선”하라고 되어 있지 당파적 이익의 극대화를 권하지 않는다. 정당은 공익을 두고 경쟁하는 정치 조직이기에 법의 보호를 받는다. 대신 정당법 제2조는 정당들에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을 해야 한다고 명한다.
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체제다. 장 자크 루소는 “민주정만큼 내전과 내란에 취약한 체제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정당하면서도 안정된 정치 질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숙고해 <사회계약론>을 완성했다. 번갈아 잘 통치하고 잘 통치받는 정치 질서를 만드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인간의 과업은 없지만, 그 일은 결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위적 합의와 노력,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심 골자다.
몽테스키외는 자유로운 체제일수록 더 많은 정치적 ‘덕성’과 ‘예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핵심은 편협한 자기 이익보다 공익에 헌신하는 것, 상대와의 평등한 관계를 존중하는 것에 있다. 그래야 “법을 사랑하고 법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시민다움이 뿌리내릴 수 있다. 모두가 “입법자이면서 준법자인 민주정”에서 정치적 예의가 없으면 상대를 지배하고 제압하려는 열정만 남아 체제를 전제정으로 이끌게 된다.
정치인이 존경받게 행동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준수해야 할 의무다. 우리 국회법 제25조는 “의원의 품위유지”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으며, 의원의 윤리는 국회법 제32조 이하의 여러 조항에 걸쳐 심사 대상임을 명기하고 있다. 국회법 제155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윤리강령’이나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을 위반하는 것은 징계 사유다.
공익 생각하고 토론하는 정치 필요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은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시한다. ‘국회의원윤리강령’은 더 분명하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인격과 식견을 함양하고 예절을 지킴으로써 국회의원의 품위를 유지하며, 국민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여야의 정치 활동에 있어 “공정한 여건과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충분한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도 약속해야 한다. ‘품위’ ‘예의’ ‘존중’은 영국 하원의 행위 규칙 1조다. 카를 마르크스와 같은 시대 활동한 월터 배젓이 ‘의회주의’를 “토론에 의한 정부 운영”이라고 했듯, 토론은 의회 역할이자 존립 이유다.
여당 대표는 품위나 예절, 인격과 식견으로 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야당과의 “충분한 토론”은 생각이 없고 인사도 악수도 거부한다. 윤리강령 위반이고 국회법 요청을 무시하는 일이다. 법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고, 입법자인 동시에 준법자가 되어야 한다는 정치가의 의무를 그는 우습게 여긴다.
대통령은 야당과 협치하고 당대표는 야당 해산을 위해 싸운다는 그의 역할 분담론은 해괴하다. 정당법이 요청하고 있는 “책임 있는 주장”과 거리가 멀고 무엇보다 “복수정당제”를 명기한 헌법 정신과 배치된다. 자신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민주당주의자’”라고 하는 정청래의 공언은 민주주의조차 불편하고 귀찮다는 뜻으로 읽힌다. 어느덧 그는 민주주의 발전에 부담이 되고 있다.
정청래의 적대 정치는 장동혁이라는 야당의 새 짝을 만났다. 그 둘은 닮았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 흥미롭게도 한 사람은 현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이 성공해야 한다거나 시민의 자유가 우선이라는 의식은 없다. 군주정의 시대도 아닌데, 이들의 권력 중심적 사고는 불쾌감을 준다.
무례한 말과 행동을 ‘사이다’라며 환호하는 팬덤 지지자들에 아첨해 성공하는 선동형 정치가들의 득세는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 정치는 윤리적 자정 능력을 잃었다. 예의·품위·인격·식견을 갖춘 정치가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고 책임 있게 주장하고 충분히 토론해 정부를 운영하는 민주주의는 헛된 꿈일까.
박상훈 정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