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리콘밸리 구글 캠퍼스에서 엔지니어들과 대화를 나눴다. 구글은 제미나이 2.5 등 혁신적 제품을 내놓으면서 “혁신의 아이콘이 돌아왔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데 혁신의 비결이 궁금했다. 대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단순히 코드를 짜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엔지니어 1명이 제품 기획, 데이터 분석, 서비스 운영 전 과정을 책임지는 ‘전방위적 기획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개발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건 챗GPT가 아니라 나의 문제 정의 능력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AI 기술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인간의 판단력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의 본질에 가까울수록 ‘인간의 능력’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은 최근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최대 급여관리 업체 ADP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생성형 AI가 광범위하게 도입된 이후 AI 노출도가 가장 높은 직업군에 속한 22~25세 젊은 노동자들의 고용이 13%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는 고용시장의 가장 취약한 고리부터 AI의 칼날이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에서는 ‘20대 취업 불황’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이 논문의 핵심은 고용 감소가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고용 감소세는 AI가 인간의 작업을 ‘자동화’하는 영역에서만 두드러졌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고객 서비스처럼 AI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작업을 대신할 수 있는 직업이 여기에 속했다. 반면, AI가 인간의 능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고용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었다.
연구진은 이 현상을 “AI가 ‘책에서 배우는 지식’은 대체할 수 있지만,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암묵적 노하우’는 대체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대학에서 배운 이론적 지식만으로는 더 이상 AI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경험과 판단력을 갖춘 숙련된 노동자들은 AI의 직접적인 위협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구글에서 목격한 현장과 이 논문의 내용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은 AI 3강 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이를 위한 방법론은 헤매고 있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전히 ‘정답 맞히기’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대 불패’도 계속된다. 아이의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해주고, 실패할 기회를 빼앗으며, 완벽한 스펙을 쌓는 데만 집중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문제를 정의하며, 책임지는 훈련을 할 기회를 잃는다.
AI가 정해진 답을 찾는 데는 탁월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판단하는 일은 인간 몫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구글 엔지니어는 “보이는 것만 보면 희망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훈련을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더 뼈아프게 들린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창의력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이라도 교육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은 ‘AI 개발자’를 길러내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AI를 도구로 활용해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실패할 권리를 돌려주자. 부모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이력서보다, 스스로 부딪치고 깨지며 얻은 한 번의 깨달음이 훨씬 더 값지다.
AI는 이미 우리의 일자리 지형을 바꾸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위기는 동시에 큰 기회다. 진짜 경쟁력은 AI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판단력에 달려 있다. 우리 아이들이 AI와 경쟁하는 대신 AI와 협력하는 인재로 자라도록, 지금 당장 교육의 근본부터 성찰하고 바꿔나가야 할 때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