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주들 “990원 소금빵은 불가능” 입 모아
“기본 재료비만 800원···남는 게 거의 없어”
임대료 등 부담 크고 ‘프랜차이즈 과포화’도
서울 지하철 5호선 청구역 내 한 빵집에서 손님이 빵을 계산하고 있다. 백민정 기자
경제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 운영자 슈카(전석재)가 지난 주말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어 ‘990원짜리 소금빵’을 팔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슈카는 “저마진, 원재료 직송, 포장 단순화로 비용을 낮추고 시장을 흔들어보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높은 빵값이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끊고, 박리다매를 통해 소비를 늘려 전체 빵값을 낮춰보겠다는 시도다. 하지만 현장의 자영업자들은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1일 ‘빵 박리다매’의 원조격인 서울 지하철 역사 내 빵집 7곳을 찾았다. 업주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990원 소금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렴하기로 소문난 지하철 빵집의 빵들도 대부분 개당 1000~2000원대다.
7호선 숭실대역 A빵집의 소금빵은 1600원으로 이날 돌아본 빵집 중 가장 저렴했다. 이 가격도 50% 할인된 것이다. 사장 장양씨(46)는 “지난 2월부터 경기 침체로 반값 세일을 이어오고 있는데, 본사 지원이 없다면 유지하기 어렵다”며 “소금빵을 990원에 판매하려면 수천개를 한꺼번에 찍어내야 한다. 팝업 행사라면 가능하지만, 상시 판매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호선 선릉역 내 B빵집은 소금빵을 2400원에 판다. 점장 김모씨(41)는 “밀가루, 설탕, 소금, 드라이이스트, 버터 등 소금빵의 기본 재료비만 800원가량”이라며 “반죽 재단, 버터 충전, 성형, 2차 발효까지 거쳐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빵”이라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에 임대료, 전기료, 수도료, 카드 수수료까지 더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소비자들은 재료비만 보고 더 싸게 팔 수 있지 않겠냐고 하지만, 실제 고정비를 고려하면 억울한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내 한 빵집에 빵이 진열돼 있다. 백민정 기자
원재료 값 상승도 빵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7곳 중 가장 비싼 소금빵은 고속터미널역 C빵집의 ‘왕소금빵’으로 2500원이었다. 사장 D씨는 “대충 만들어도 원가가 1500원 이상은 된다. 990원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버터·치즈·생크림 같은 유제품은 원래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물가 인상시 상승폭도 크다. 여름철이면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채솟값까지 급등한다.
임대료 부담도 크다. 지하철 역사 내 점포는 매출의 일정 비율을 지하철공사 측에 임대료로 내야 한다. 선릉역 B빵집 점장 김씨는 “한 달 매출의 30%가 임대료로 나간다”고 전했다. 지하철 5호선 청구역 빵집 매니저 양모씨도 “매출의 60%가 재료비, 그다음이 임대료”라며 “남는 게 거의 없다”고 전했다.
빵값이 비싸진 또 다른 이유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과포화’도 꼽힌다. 같은 브랜드 점포가 가까이 붙어 있다 보니 빵 공급은 늘지만 한정된 손님을 나눠야 하고, 판매량이 줄면 단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요 자체도 크지 않다. 빵은 한국인의 주식이 아닐뿐더러, 최근에는 ‘저속노화’ ‘건강식’ 트렌드로 빵 섭취를 줄이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하지만 수요에 맞춰 생산을 줄이기도 어렵다. 양씨는 “매대가 비어 보이면 손님들이 오히려 ‘빵이 없다’며 외면한다”며 “차라리 폐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채워놓는 게 낫다”고 말했다. 결국 생산비 부담은 줄지 않는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 가격이 오르면 동네 빵집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A빵집 사장 장씨는 “대기업 빵집이 가격을 낮추거나 행사를 할 때 동네 빵집이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손님이 끊긴다”며 “대기업은 가만히 있어도 팔리지만, 우리는 홍보를 쏟아야 겨우 따라잡는다”고 했다. 성수동에서 개인 빵집을 운영하는 한지수씨(36)는 “빵은 레시피 연구부터 발효, 성형까지 손이 많이 간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빵이 저 가격인데, 직접 만드는 빵이 그보다 비싼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