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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들이 만든 조세이 탄광 기적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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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들이 만든 조세이 탄광 기적의 드라마

입력 2025.09.02 20:51

수정 2025.09.0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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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바탕의 수중촬영 화면 속에 새우잠을 자듯 모로 쓰러져 있는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하반신은 신발과 작업복에 허벅지와 둔부까지 윤곽이 뚜렷했지만, 상반신은 진흙 등으로 덮여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화산재에 당한 폼페이 시민들이 그렇듯 물로 가득 찬 해저 탄광의 갱도에서 발견된 광부의 주검은 83년 전 사고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들이 겪었을 생의 마지막을 생각해본다. 갱도가 무너지며 바닷물이 삽시간에 들이차자 극한의 공포에 빠졌을 것이다. 얼마간 숨을 참다가 견디지 못해 물을 들이켜다 질식했을 것이며, 산소부족으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지난달 25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의 수심 43m 바다 밑에서 김경수, 김수은 잠수사가 왼쪽 대퇴골(허벅지뼈), 왼쪽 상완골(어깨와 팔꿈치를 연결하는 뼈)과 왼쪽 요골(팔꿈치와 손목을 연결하는 뼈) 등 3점을 발굴했다. 하루 뒤인 26일에는 사람의 머리뼈를 수습했다. 잠수사가 플라스틱 상자를 열자 아래턱 뼈가 사라지고 탄진으로 거무스레해진 두개골이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1942년 2월3일 ‘조세이 탄광’이 사고로 수몰될 당시 작업 중이던 183명(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 중 한 명일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6차례에 걸친 잠수 수색 끝에 희생자 유골이 83년 만에 물 밖으로 나온 것이다.

유골 발굴 작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사고 지점이 해안에서 수백m 떨어진 데다 해저 갱도여서 접근이 쉽지 않았고, 탄부들이 수몰된 장소도 특정되지 않았다. 육상에서 해저로 진입하는 갱도는 사고 후 곧바로 폐쇄됐고, 콘크리트와 흙으로 덮여 입구가 어디인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 시민들의 숭고한 인간애에 바탕한 헌신이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사고 30여년이 지난 1976년 우베시의 향토 사학자 야마구치 다케노부가 지역 학술지에 ‘조세이 광산 재해’에 관한 글을 발표해 이 사고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인권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지적했다. 마음이 움직인 이노우에 요코 등 시민들이 1991년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을 결성해 추도비 건립, 증언·자료 수집과 편찬 사업을 진행했다. 한국의 유족들에게 연락해 유족회가 구성됐고 함께 매년 추도식을 열었다. 2013년 추도비를 건립한 뒤 사업을 일단락하려다 유족들의 간절한 호소에 따라 유골 발굴을 결의했다. 당시만 해도 이 어려운 일을 시민들만의 힘으로 해낼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새기는 모임’은 여러 차례 일본 정부에 발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직접 나서기로 했다. 2024년 갱도 입구 토지 소유주인 우베시와의 교섭을 마무리짓고 갱도 입구를 찾기 위한 굴착 공사에 들어갔다. 3차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일본과 한국에서 도합 5억원 가까운 성금이 모였고, 자발적으로 공사를 맡겠다는 현지 업체가 나타났다. 수중탐험 전문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가 발굴 작업을 자원했으며 현지의 토목·항만공사 전문가, 수중작업 전문가들이 속속 힘을 보탰다. 4월부터 한국인 잠수사 부부가 합류했다. 한국 유족들과 시민들이 매번 현지를 방문해 발굴단을 응원했다. 양국 시민들이 마음을 모으니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이 기적처럼 풀렸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간의 정상회담은 과거사는 건드리지 않은 채 미래 협력만 논의돼 아쉬움을 남겼다. ‘한·미 정상회담 성공을 위해 일본과의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얄궂은 프레임이 이 대통령의 운신을 제한했던 것 같다. 그 이틀 뒤 과거사는 외면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외침이 조세이 탄광의 앞바다에서 울려 퍼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세이 탄광 유골 발굴은 이국에서 뜻하지 않게 숨진 이를 고국에 돌려보내는 인도주의적 사업이다. 2004년 한·일 정상회담 합의를 바탕으로 실무협의체가 구성됐고, 2008~2010년 423위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된 전례도 있다. 지바현 관음사에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6인의 유골이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유골 발굴 및 봉환은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해원(解寃)’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한·일 역사 화해를 재시동하는 유효한 접근법이 될 수 있다. 한·일 시민이 연대해 입구를 열었으니 양국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는 것은 큰 부담도 아니다. 한·일 정부가 조속히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유골 수습과 봉환에 나서기 바란다.

서의동 논설실장

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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