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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동맹의 덫

입력 2025.09.02 20:54

트럼프 관세의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은 아직은 전면적이지 않다. 관세 부과 유예와 협상 지연이 다반사였고, 물가 상승을 내다본 업체들이 미리 재고를 확보해둔 덕이다. 관세의 영향은 그 인상분이 수출 가격으로 얼마나 전가될 수 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법인데, 그동안은 수출업체들이 해외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가격을 올리는 대신 국내 공급체계 내에서 손실을 흡수해온 사정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관세 영향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공개된 한국은행 추정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 탓에 한국 경제성장률은 올해 0.45%포인트, 내년 0.60%포인트만큼 줄어든다. 올해만 놓고 보면 대략 11조원 넘게 국민소득이 줄어드는 셈이다. 물론 이런 추정값은 의미가 제한적이다. 대미 투자 확대의 국내 산업 구조에 대한 효과, 국제 질서 변화에 따른 영향 등이 고려되지 않아서다. 다만 한국은행이, 미국 현지 생산의 확대가 국내 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함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고용 위축과 인재 유출이 야기될 가능성을 경계한 대목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래서도 한·미 통상 협상과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정부가 미국 측에 1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한 ‘마스가(MASGA)’ 조선업 협력 사업은 경제성과 안보 연관성의 양 측면이 다 중요하다. 미국 현지의 높은 생산 원가 탓에 신조 선박이 가격 경쟁력이 없는 점, 수십만개 부품을 조달할 후방산업 공급망이 현지에 구축되지 않은 점, 현지 투자 규모에 비해 수주 규모에 불확실성이 있고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과거 위스콘신 조선소를 인수했던 이탈리아 조선사 ‘핀칸티에리’ 사례처럼 될 수 있는 점은 사업성을 불투명하게 한다. 미국은 한국 자본이 투자한 자국 내 조선소에 대해 결국 자국의 완전한 소유와 통제를 관철하려 들 것이다.

마스가 사업은 한국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해 미국의 중국 견제를 지원하는 성격으로 미국의 필요에 맞춰 한·중관계를 희생시키는 선택이므로 안보 측면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미 해군 기지를 위한 특화 조선소가 추진되어 시설이 미국에 무상 공여되고 인접 방위산업 특별구역에 대해 미 해군이 치외법권을 인정받는다면, 독립국가의 주권 사항이 외국 군대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되고 제한되는 것이기에 그것 자체가 문제적 사건이다. 더욱이 특화 조선소가 제2의 사드가 될 위험 또한 배제할 길 없다.

조선업 협력 기금을 포함해 한국 정부와 재벌이 이번에 미국에 제공하기로 약속한 전체 기금은 무려 5000억달러에 이른다. 액화천연가스(LNG) 구매까지 더하면 6000억달러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두 배 큰 일본보다도 많은 액수다. 이는 작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고 올해 본예산쯤은 훌쩍 넘어선다.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시기 8년간 대미 무역 흑자 누계의 약 3배인 것을 보면 애초부터 무역 불균형 시정은 핑계였다. 이 정도의 외화자금이 인출될 예정인데 한국 경제에 부담이 작을 리 없다. 그런데 그렇게 ‘진상’되는 기금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한다. 기금 수익의 90%는 미국에 귀속된다. 그러니 이건 투자가 아니다. 자본주의 논리도 아니다.

지금 미국은 해외 수요 시장에 의존해온 한국 경제의 약점을 이용해 고율 관세를 수단 삼아 공납 관계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노골적인 제국주의 경제 침탈을 자행하고 있다. 종속국의 투자라는 외견을 갖춰 자본, 기술, 제조 역량이라는 공물을 제국 중심부로 집중시킬 것을 강요한다. 이는 자본주의 가치 법칙과 무관한 전(前)자본주의적인 수탈이므로 공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프랑스 정치경제학자 사미르 아민이 전(前)자본주의 질서로 분류했던 공납제가 오늘 지배와 종속의 국제 관계로 부활하고 있다.

이번 한·미 통상 협상에서 정부는 한·중관계의 우호적 관리와 안정적 유지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국 측에 끝까지 끈질기게 설득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동맹의 덫에 스스로 걸려들었고 미국의 포석대로 움직이는 장기판의 말이 되어 미국의 봉건적 수탈을 수용했다. 그 대가로 자동차 관세율 인하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성차 자본이 미국 현지 생산 계획을 줄일 일은 없다. 국내 물량 축소는 피할 수 없다. 부품사 노동자들 앞에 놓인 고된 구조조정의 시간도 그렇다. 조선업 노동자들이라고 다를까. 국내 투자 위축으로 부정적인 영향에 노출되기 쉽다. 정부의 피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데, 내년도 예산안에 배정된 통상 현안 대응 2조1000억원으로는 닥쳐올 쓰나미를 막을 수 없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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