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부터)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올라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며, 역대 북·중·러(구소련) 정상으로도 66년 만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전쟁으로 미·중 경쟁이 격화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과 대치하는 가운데 열린 이번 행사에서 북·중·러 정상이 우의를 확인한 것은 한반도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중·러 연대가 한·미·일과의 신냉전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한국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후 6년 반 만에 방중한 김 위원장은 중국의 특별한 환대를 받으며 첫 다자외교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날 특별열차 편으로 베이징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중국 권력서열 5위 차이치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의 영접을 받았고, 이날 톈안먼 성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푸틴 대통령과 함께 시 주석 곁을 지키며 성루에도 나란히 앉는 등 최고 수준의 예우를 받았다. 3국 정상이 함께 이동하며 담소를 나누고,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이 행사 도중 몸을 기울여 대화하는 모습에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북한이 핵무력 국가 선언, 우크라이나전 파병 등으로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북한은 또 향후 미국과 협상할 때를 대비해 중·러라는 ‘뒷배’도 확보했다.
북·러 외에 이란·파키스탄을 포함해 26개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서 세계가 서방과 비서방으로 갈라지는 대결 구도가 성립될 가능성이 나타난 점도 주목을 요한다. 시 주석이 이날 연설에서 “인류는 다시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세계 각국 인민과 함께 인류 운명공동체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한 건 의미심장하다. 지난 1일 톈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이 다자무역 질서 수호를 강조한 것에 더해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와 보호주의에 맞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걸로 볼 수 있다.
결국 전승절 행사는 중국 중심의 반서방 연대, 북·중·러 연대 가능성을 국제사회에 과시한 셈이 됐다.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북·중·러 정상의 톈안먼 퍼포먼스는 ‘반미’ 연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국제사회에 각인될 수밖에 없고, 동북아와 한반도 지형에도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당장 한·미·일 협력의 바탕 위에서 중·러,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해야 하는 한국 외교엔 중대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구 공산권과 서방 간의 신냉전으로 격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지정학적으로도 최전선에 위치한 한국으로서는 외면하기 어려운 과제다. 북·미 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촉진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도 해내야 한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그 도전 무대가 될 것이다.